"이익보다는 인연과 보람으로"

고객의 신뢰로 살아온 인쇄와 종합광고 인생
남의 것을 빼앗느니 굶는다는 원칙

스마트폰, 태블릿PC의 대중화로 누구나 손으로 뉴스를 보고 광고 또한 온라인으로 접하는 시대다. 세상이 변하면 자연히 그에 따라 득실을 보는 분야와 업체들이 생긴다. 디지털 기술로 손해가 가장 크다고 알려진 인쇄종합광고업계는 어떨까. 21년째 인쇄·종합광고인으로 살아온 성산 이성모(59·聖山 李聖模·호적명 용모) 신진인쇄 대표는 "이익보다는 보람으로 지켜내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각자 보유한 인쇄기기와 기술이 발전하는 데다, 모든 내역이 투명해졌습니다. 사보나 홍보지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카탈로그 정도가 괜찮은 수준이에요. 파이 자체가 작아지다보니 남아있는 인쇄업체들은 현상 유지를 하는 정도입니다. 기존 고객들과의 신뢰관계와 보람이 아니면 버티기 어렵다고 봐야죠."

그는 1994년 을지로 삼각동에서 시작, 13년 전 철거로 서울 충무로에 자리잡았다. 아직은 불황이 아닌 철거 당시, 도심 곳곳으로 흩어진 인쇄소들은 대학 인근을 제외하고는 거의 문을 닫았다. 계획적인 출판단지 몇몇을 제외하면, '인쇄는 충무로'라는 집적효과 덕분에 명맥을 유지하는 유일한 곳이 충무로다.

"사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인쇄보다는 종합광고였습니다. 종합광고는 행사용품이나 판촉물들을 다루는 건데, 고객에게 필요한 다양한 제품들에 로고를 인쇄하거나 대행구매를 해주는 업무지요."

공부는 잘했지만 특별한 기술은 없었던 그에게 인쇄업을 하던 친구의 권유가 그 시작이었다. 음식점이며 카페 같은 가게와 종합상사같은 기업을 직접 찾아 계약을 따내는 영업이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3개월이 지나도록 '오더' 하나를 못 따냈다.

"종합광고는 이른바 견적 싸움이에요. 그런데 견적을 무리하게 내다보면 제품이 안좋거나 심지어 거짓말을 해야될 때도 있거든요. 사실 상대하는 고객의 90%가 영세업자인데 감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계약을 못 하더라도 신의있게 하자' 고 생각했죠. 덕분에 경쟁에서는 매번 밀렸지만요."

그러던 어느날, 혜화동에서 막 문을 연 레스토랑 '토함산'에 견적을 보냈더니 전화가 왔다. 열댓개 되는 항목 중 한 개의 가격이 비싸다는 얘기였다. 어떻게든 첫 계약을 따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럴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에누리가 없는 대신 양심적으로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나오면서 안되겠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연락이 왔어요. 그런 생각을 이해한다며 믿어보겠다는 거였어요. 그 계기로 용기를 낸 게 여기까지 온 거죠.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언젠가는 사장님을 다시 찾아 꼭 고맙다고 얘기하려고요."

본인 입으로 '지나치게 꼼꼼하다'고 말할 정도의 성격 덕분에 한번 맺은 계약은 지속됐다. 그러나 '큰 돈을 벌진 못했다'고 말하는 그, 바위처럼 확고한 그의 또다른 원칙 때문이다.

"세상에 영업하는 사람들이 참 많잖아요.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명함을 건네고 계약을 따내려는 게 일인 사람들이죠. 그러다보면 남의 계약을 빼앗아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거래처가 있는 곳들에는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배가 부른다면 차라리 굶겠다는 마음이지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딸의 아버지, 가장으로서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바보같을 정도로 단단하게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천성도 천성이지만, 원기55년 관촌교당에서 입교해 한눈 판 적 없는 오롯한 신앙인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거래처 직원의 실수로 당장 내일 행사 리플렛을 망친 적이 있었어요. 규모도 커서 몇백만원 손해가 났는데, 대강 보니 그 직원의 두세달 월급이더라고요. 고민 끝에 내가 손해보기로 결심을 했죠. 직원에게는 '다음부턴 더 잘 봐주세요' 하구요."

양주교당 교도로 충무로의 '원불교맨'이자 금연을 권유하는 '금연운동가'로 알려진 이성모 대표. 그는 명함한통 같은 1~2만원짜리 일도 큰 건과 분별심없이 찍어낸다. 봉불때부터 거래했던 유린장애인종합복지관 직원들과는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고 감사하다는 그의 인쇄·종합광고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신념은 '이익보다는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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