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일정한 종지의 교리를 갖고 가르침을 펴서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일체중생을 낙원으로 인도하자는 것이다. 성리품 9장은 이러한 종교의 문에 '성리를 밝혀야하는 이유'를 말해 놓았다.

영국의 한 TV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줄듯 말 듯 하기를 두어번하다가 세 번째에 바나나를 주니 원숭이가 그 바나나를 받은 후 곧장 사회자 뺨을 때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영국에서는 그 원숭이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는 원숭이에게도 불성이 갊아 있다는 증거로 받아 들여졌다.

성리란 우주만유와 우리마음의 본래이치인데 대종사께서 도형으로 성리를 일원상으로 드러내 주고, 성리의 응화신인 우주만유가 부처임을 천명해주었다. 그래서 교도라면 누구나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신앙을 배우게 되고 사실적이며 죄복을 주고 받는 인과보응의 내역을 잘 알게 된다. 이렇게 성리를 현실과 연락시켜 신앙하게 해주고 수행과 연결시켜 성리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단계를 법위등급으로써 나타내주었다. 알게 모르게 성리를 찾게 하고 구체적으로 11과목으로 성리를 손안에 쥘 수 있도록 교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성리화하였으며 궁극에는 성리화가 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는 말씀처럼 교도라면 누구나 성리를 생활화하게 교법이 이루어져 있다.

성리가 모든 법의 조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산종사께서 "도가에 견성하는 공붓길이 없으면 사도(邪道)이다. 성리의 단련 없이는 참 도를 얻을 수 없고 참 법을 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성리는 꾸어서라도 보아야 한다"라고 종교의 문에 성리를 밝혀야하는 이유를 드러내주었다. 참 도를 얻고 참 법을 전하는 기준이 성리와 성리의 단련이라는 말씀이니 일원은 제불제성의 심인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고 역대 종법사가 서로 주고받는 심인 역시 성리에 바탕한 법이라는 말씀이다.

대종사께서 언어도단하고 심행처가 멸한 성품자리에서 생멸이 있어지는 성리를 진공묘유라 하였고, 다시 대소유무로 밝혔다. 그러므로 진공묘유를 내 것 삼는 적공을 통해 참 도가 얻어지고, 진공묘유에 토가 떨어질 때 살활자재의 힘이 쌓여 법을 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허공을 보면 묵묵하여 천지가 빈 껍질 같은데 세상을 보면 조용할 날이 없다. 시시비비로 벌여져 있고 생로병사의 순환이 멈추지 않는다. 그 가운데 선악죄복으로 인과보응되는 육도윤회가 있다.

영원한 시공 속에 역력고명한 마음만이 스스로를 부처로 이끌기도 하고, 어두운 중생으로 강급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니 도가에 성리를 밝히지 않으면 진공묘유라는 참 법을 모르고, 모르니 참법이 나올 수가 없고, 마침내 참 법을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하루일과에 바탕하여 법있게 살지 않으면 저녁이면 거둘 것이 없다. 하물며 일체생령을 살리려는 종교가에서 성리를 밝히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붓길을 잃고 순서없이 방황하며 악도에 강급하겠는가.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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