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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실천강연 2 / 기도정진 유념의 위력
교리실천강연 2 / 기도정진 유념의 위력
  • 노혜은 교도
  • 승인 2014.09.05
  • 호수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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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의 일원상 부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이 가족들에게 불공하는 것과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도안교당의 구교당인 도마교당이 도안으로 이전 계획을 세우면서 원불교100성업기도와 함께 원기97년 3월1일에 도안교당 건축불사 1000일기도를 결제하게 됐다. 당시 교단에서는 자신성업봉찬 4정진운동인 선·유무념·의두·기도정진을 펼쳐 가고 있는 시점였다. 그래서 나의 유무념 조목을 '기도정진운동 빠지지 않고 하기'로 정했다. 그 이유는 기도정진으로 대정진 대정진 대정진하면 4정진을 모두 실행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벽마다 교당에서 교무님과 기도를 올렸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좌선을 해왔던 터라 어렵지 않았지만, 전날 늦게까지 일이 있던 날이나 몸이 안 좋은 날은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고, 가기 싫은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유무념을 생각하며 '하기로 한 일을 죽기로서 하자'고 다짐하며, '노혜은 정신 차리자'라는 주문을 걸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고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교당을 내왕하면서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부하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오늘은 무슨 기도가 있어서 늦는다"고 하면 가족들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썩 내켜하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잠이 들었고 새벽기도 알람소리에 맞춰 잠이 깨면서 '철주중심 석벽외면'이라는 법문을 떠올렸고, 하자는 조목을 대조하며 기도정진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정진을 하던 중 참회의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교당 일을 하면서 교당에 자주 갈 때마다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무슨 일로 가야하는데 가도 돼?"하면서 퉁명스럽게 묻곤 했다. 부드러운 언어로 해야 하지만 나는 내심 가족들이 교당에 못 가게 할까봐서 "오늘 교당에 무슨 일이 있어서 늦어. 그런 줄 알아" 하는 식으로 어떤 토도 달지 못하게 너무 강하게 밀어 붙였던 것이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겨우 기도를 마치고 한동안 울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가족들 보기가 미안해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등교 시키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한 내 모습을 바라보니 편치 않았다. '내가 왜 기도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속이 상해서 멘토 언니한테 이러한 상황을 말하고 감정을 받아 겨우 마음을 추스렸다. 그리고 법당의 일원상 부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이 가족들에게 불공하는 것과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부처님으로 모시니 큰 업장 하나가 뚝 떨어져 나간 것 같았고, 남편과 아이들이 더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가족들과 소통이 되니 교당 갈 일이 생기면 부드러운 말씨로 얘기하면 흔쾌히 허락 해 주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어떤 일이든지 사심 없이 해야 한다는 것과 모든 원인은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도 알았다. 상대방만 탓했던 것이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참회가 됐다.

그렇게 기도생활을 하던 중 드디어 원기98년 2월3일, 도안교당에서 첫 법회가 시작이 됐고, 이전한 다음날부터 나는 혼자 구 교당에서 새벽기도를 했다. 며칠 뒤 교무로부터 새로운 기원문을 받아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새로 받은 기원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온통 다 가슴에 와 닿으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끝날 때까지 울면서 기도를 마쳤다. 아마 한달 보름 그렇게 매일 매일 울면서 기도를 했다. 그 눈물의 가장 큰 의미는 참회이었고 감사함의 눈물이었다.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큰 일원상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딱 감싸고 어떤 방패막이가 되어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충만했다. 그날의 느낌은 잊혀지질 않는다.

그렇게 유무념 조목으로 기도정진을 하면서 스스로 업장소멸과 경계를 당하여 크게 흔들림 없이 지혜롭게 생활해 오던 중 내 마음에 분별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속내를 분별하게 되고, 어떤 일의 처리에 대하여 '이렇게 처리를 해야 하는데 왜 저렇게 처리를 했지' 등 등 사사건건 분별심이 나를 괴롭혔다.'아 공부할 때가 돌아왔구나' 하면서 유념해야지 하고 분별심이 생길 때마다 1분선을 한 뒤로 경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내 마음도 들여다 본 후 내려놓는 공부에 매진했다.

보통 사람들은 팔자얘기 많이 한다. '내 팔자가 원래 그래 팔자대로 사는 거지', 하지만 내 팔자, 구자로 고쳐서 살 수 있는 이 공부 이 사업이 있는데 팔자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이번 공부로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을 얻었다.

<대전충남교구 도안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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