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채식 인구, 전국민의 20%

▲ 채식의 종류와 섭취유무 표.

가끔 육식을 하는 세미 채식주의
채식주의자가 흔해졌다. 예전에는 '입짧은 사람', '까탈스러운 사람' 정도로 치부되던 '채식주의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국내 채식 인구는 두배로 늘어 지금은 50만명 정도가 채식을 하며, 채식 할 의향이 있다는 잠재적 채식인구까지 합치면 전 국민의 20% 정도에 이른다.

채식의 이유는 주로 콜레스테롤, 고혈압 등 건강이나 살생을 꺼리는 윤리적인 데에서 출발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원인도 존재한다. 그 중 환경 문제는 최근 많은 저서와 연구 결과로 관심을 받는 이유다.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12억 8천 마리의 소들이 전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미국의 경우 곡물의 70%를 가축이 먹어치운다고 폭로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1970년 이후 사라진 열대우림의 70%가 축산업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량가축사육으로 인해 불필요한 환경파괴가 자행된다는 것이다.

고기 1킬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7킬로그램의 곡식이 필요하다.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는데,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1인당 육류 소비는 50년간 5배나 증가했다.

이 내막에는 미국과 유럽의 대규모 사육시설과 메이저 육가공업체들이 자국 경제를 위해 국가와 교묘히 결탁해 약소국에 고기를 떠넘기는 정치·경제적인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육식신봉주의'의 내막이 알려지고 채식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채식의 구체적인 종류들도 알려졌다. 몇 년 전, 채식을 한다는 친구가 달걀을 먹는 것을 보고 "너 채식한다며?"라고 물었더니 친구는 답했었다. "난 눈 달린 것만 안먹어. 그것도 채식 종류야."

이제는 흔해진 채식, 지금은 누구나 다 어느정도 필요에 공감하는 채식, 그 종류는 얼마나 다양할까.

채식은 크게 다섯가지 종류이며 세계 공통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채식'은 단계 중에서도 가장 완전한 채식으로 '비건(Vegan)'이라고 한다. 그 보다 낮은 단계는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만 먹는 '락토(Lacto)', 여기에 달걀까지 먹는 '락토오보(Lacto-Ovo)', 여기에 생선을 먹으면 '페스코(Pesco)'다.

알고보니, '눈 달린 것만 안먹는' 친구는 락토오보, 즉 소나 돼지, 닭과 생선을 먹지 않고 달걀과 유제품은 먹는, 채식의 5단계 중 무려 3단계의 채식주의자였다.

놀라운 점은, 전반적으로 채식을 하지만 고기나 유제품을 가끔 먹는 것도 채식의 종류, 가장 낮은 단계인 '세미(Semi)'라는 것이다.

이 세미에도 세 종류가 있는데, '페스코(Pesco)'는 유제품과 달걀, 어류까지 가능하며, '폴로(Pollo)'는 페스코에 조류까지 더한 채식이다. 종류보다는 시간에 따른 채식인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도 있는데, 이를테면 평일에는 채식을, 주말에만 육식을 하는 등의 경우를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채식을 '육류 금지', '동물성 식품 금지' 같이 철두철미한 자기와의 전쟁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따금 필요에 따라 육식을 하는 세미 채식주의자들도 많으며, 이들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단계를 선택해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채식은 단지 먹는 것에만 국한된 '취향'이 아니다. 채식은 살생에 대한 거부로 다른 생명체를 소중히 하는 보은일 수도 있고, 말초적인 자극과 순간적인 만족감보다 건강한 섭생을 추구하는 선택일 수도 있다.

혹은 경제논리를 내세워 건강하지 않은 소비를 강요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채식은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를 먹는 문제로 집약한 삶의 지향, 가치관인 것이다.

▲ 집에서 채식요리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료.


채식주의자들과 함께 한 채식요리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 이제 우리는 어떻게 건강하게 먹을것이냐를 고민한다. 웰빙열풍을 타고 채식식당이나 채식요리강좌도 늘고 사찰음식도 관심을 끌고 있다.

안국동의 'ㅇ' 채식식당은 채식 중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인 비건(Vegan) 음식을 판매해 스님이나 불교, 힌두 국가 관광객들의 명소가 됐다. 채식주의자들의 모임도 곧잘 열린다.

짜장면과 콩까스, 매실탕수채와 쌈불고기를 주문한 자리에서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K씨는 "고기를 안 먹다보니 중국음식을 접하기 어려웠는데, 채식짜장면은 자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기 대신 버섯을 넣은 짜장면과 각종 야채와 콩고기를 튀겨 만든 매실탕수육은 식감이 육류와 흡사했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려는 J씨는 "콩고기로 만든 콩까스는 돈까스의 치감이 못미친다"며 "채식식단은 서양식 요리법보다는 우리나라식으로 요리해야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전체적으로 포만감이 덜하며, 먹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가 적어 '먹는 피로'가 덜한 느낌이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매실탕수채, 불구이쌈밥, 콩까스, 채식짜장면 등 식단 모두가 완전채식(비건)요리다.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단계의 채식주의자들이지만, 만약 채식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했다. "우리가 너무 고기의 환상에 빠져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식당 말고도 채식식당과 카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채식요리를 위한 식재료들을 판매하는 업체도 많아지는데, 화장품을 넘어 비건 동물사료까지 그 지평을 넓히고 있다.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 현장 구매하거나,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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