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룡고조(回龍顧祖)라 했다. 등선의 산룡(山龍)이 역방향으로 돌아누우면서 나를 잉태한 조산(祖山)을 우러러 보는 지세로 풍수에 쓰이는 말이다. 풍수가들이 가장 좋은 명당자리 꼽는다. 교단 구성원들은 원기2세기를 목표로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면서 근원을 놓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원100성업을 위한 각종 행사와 기념사업 등이 연달아 진행되면서 강조점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지난주 본지 기자가 만난 사람에서 전북발전연구원장을 역임한 원도연 교수는 원100성업 테마로 '소태산대종사 다시보기'를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소태산대종사가 전한 메시지를 잘 알지 못하고, 원불교 교조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개벽의 가치 확산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펼쳐 종교로서 사회적 권위를 쌓아야 한다고 했다. 100년 전 물질문명에 대응하는 정신개벽의 가치가 이 시대의 가치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원100주년 기념대회 공청회에서도 흘러나왔다. 정상덕 사무총장은 인사말에서 "대종사를 주세불로 어떻게 모시고, 대각의 가치를 사회에 전할 것인가"에 고민이 많다고 했다.

교조를 한국 사회에 바로 알리고, 소태산대종사의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때다. 정산종사·대산종사 탄생100주년 기념대회를 순차적으로 개최하면서 내외부적으로 교조를 먼저 드러냈는지 반성할 일이다. 올해가 대산종사탄생100주년의 해이어서인지 교당 법회나 모임에 가면 교조 대종사의 법문 보다 대산종사 부연법문이 먼저 인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대종사와 정산종사, 대산종사가 함께 나란히 모셔진 진영이 보급돼 우리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가 이럴진대 일반 사회에서는 소태산대종사를 어떻게 보겠는가.

소태산대종사는 한 분이다. 원불교는 소태산대종사의 대각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원기2세기를 맞는 축제에 주인공인 교조의 가치를 확산하는 프로그램이 안 보인다. 소태산대종사는 한국인에게, 인류에게 어떤 분이고,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없다는 점은 심히 유감스런 일이다.

원기2세기 청사진이 그려지는 이때 심도 있게 해야 할 일은 회룡고조다. 우리는 원초적인 교조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그분의 경륜을 세상에 확산시킬 의무가 있다. 이것은 연원불을 교헌에 넣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소태산대종사, 불교의 옷을 입지 않고도 시대를 혁신하려 했던 그 분의 가치를 세상에 확산하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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