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는 아내의 사고 후유증 지키며 감사생활
대각개교절은 회사공휴일·'자리이타' 정신으로 운영

사방이 어둑해진 저녁 여섯시, 횡단보도 파란불을 미처 보지 못한 차는 그대로 엄마와 두 아이를 치고 만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다리를 다치는 정도였지만, 아내는 그 길로 중환자실에서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 그 상태로 일주일이 흐르자, 의사도 고개를 저었다. 뇌가 많이 다쳐 깨어난다 해도 정상일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내내 침상을 지키며 기도에 매달렸다. 신앙에 기대고 신앙의 힘을 믿는 것,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깨어나기만 하라고, 그러면 어떤 상태든 내가 감당하고 책임지겠다고 기도했지요. 그런데 정말 아내가 깨어났어요. 기억이 짧거나 사람을 못 알아보는 상태가 계속됐지만,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서울교구 구로교당 선산 김용현(61·宣山 金龍玄) 교도는 그 마음으로 20년 넘도록 아내의 사고 후유증을 돌봐왔다. 아무도 '못 살아난다'고 했던 아내 정타원 한영경 교도는 이후 반신불수까지 감당해야 했지만, 한 순간도 포기하거나 재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제 거동도 거의 자유롭고 식사를 챙기는 정도까지 나아진 아내, 여전히 모든 외출을 함께 해야하지만 "이 정도로 나아진 것도 기적이며 은혜"라며 늘 감사하는 그다.

앞길 창창한 30대에 큰 괴로움에 마주한 그, 그러나 결혼하면서부터 마음 기댄 신앙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알고보니 형편이 어렵던 사고 차량 운전자에게도 원망보다는 측은지심으로 서둘러 합의를 해주었고, 가정이든 직장에서든 더욱더 '자리이타' 정신을 지켜갔다.

"아마 원불교 안 다녔다면 이렇게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늘 말해요. '당신이 나에게 가장 잘한 일이 원불교 데려가 이 회상에 입교 시킨 것'이라고요."

결혼 후 신심 장한 교도였던 아내를 따라 구로교당에 입교한 것이 원기64년. 광명시로 이사온 부부는 교당이 어딘지 몰라 종로교당까지 가서 가까운 곳을 물었다. 유현정 초대교무가 전셋집 거실에서 열댓명으로 법회를 보던 구로교당 초창기, 그는 구로교당의 세 번째 남자교도로 등록됐다.

"교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이 교리를 알아야 되겠다'해서 두꺼운 노트에 정전을 쓰기 시작했어요. '사경'이라는 개념도 몰랐는데, 꾹꾹 눌러 쓰다보니 조금은 더 알아지더라고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사경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됐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 30분동안 100년성업기도, 또 30분은 가족기도, 그리고 마지막 30분은 사경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 심지어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 (주)유한화건에서도 한줄이라도 인터넷 사경을 하고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교법을 기준 삼아 운영하는 덕에 올해 20년째인 회사도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영업의 비중이 특히 큰 전문건설업 분야에서도 '영업하러 다닌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직원들에게 늘 "제일 좋은 영업은 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입찰에 참여할 때도 강직한 기준으로 너무 낮거나 너무 높게 쓰지 않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서로 이익이 되는 상생의 관계'를 추구하는 확고한 운영방침 덕이다.

"3년전부터 회사에서 4월 28일을 쉬는 날로 정했어요. 혹 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휴일근무수당을 책정합니다. 직원들이 궁금해하다가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자연히 교화로 이어지지요."

가족의 사고로 인생의 2막을 겪어야 했다면, 3년전 원다르마센터 봉불식은 신앙의 제 2막을 열어준 셈이다. 당시 미국 일정 중 이근수 중앙청운회장과 한 방을 썼던 그는 이 회장의 신앙심과 열정에 반해 그의 손발을 자처해왔다.

"100년 성업기도가 잘 돼야 우리 교단이 잘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매달 1일 이관식에 참여해보고는 이거다 싶었지요. 매달 회장님을 모시고 전국을 다니며 이관식에 참여하는 것이 제 임무고 보은이다 생각했습니다."

이 회장과 함께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100년 성업기도 이관식을 지켜오는 동안, 오가는 이동에 드는 차비며 경비도 기꺼운 마음으로 냈다. "이관식에 참석할수록 좋은 기운을 더 받는다"는 그는 그렇게 신앙심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그때부터 모든 가정의례를 원불교식으로 하려 바꾸고 있지요. 대각개교절을 회사 공휴일로 정하고, 청운회 새삶실천단원으로 활동하며 삶 속에서 교법을 실천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한 것도 100년성업기도가 계기가 됐어요."

지난달보다 이번달, 작년보다 올해 이관식 참석자들이 늘어 기쁘다는 그는 "한 교구에서는 교무님들 전체가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며 인터뷰 중 가장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원기100년대를 향한 신앙의 길을 기도와 감사생활, 사경으로 오롯이 걷고 있는 그에게선 괴롭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던 고락의 세월 곳곳에 신앙의 힘과 뜨거운 신앙심이 잘 영글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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