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영산으로부터 봉래정사에 돌아오사 한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영산에서 윤선(輪船)으로 이곳에 올 때에 바다 물을 보니 깊고 넓은지라 그 물을 낱낱이 되어 보았으며 고기 수도 낱낱이 헤어 보았노니, 그대도 혹 그 수를 알겠는가" 하신데, 그 사람이 말씀 뜻을 짐작하지 못하니라.

교당에서 주1회 교전모임공부를 하고 있다. 한 분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였는데 "왜 벌을 많이 받아야 할 모 정치인이 조금밖에 벌을 받지않느냐"하는 요지였다.

정치가로 성공을 한다는 것은 인과의 이치로 볼 때, 다생에 정치를 했다는 것이고 그 지역과 나라에 그만한 복을 지은 인자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민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한 것 역시 있다는 것이다. 인과의 진리에 의하면 복은 복대로 죄는 죄대로 받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불만은 정치인들이 법위등급으로 항마 이상이 드물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수많은 계파와 집단이익 사이에 판국에 얽매여 취사하는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과 공분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성리품 12장은 바닷물을 낱낱이 되어보고 고기 수도 세어 보았다는 말씀으로 이러한 정치적 시국과 맞물려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성리 문답을 하는 대체적인 내용이 만법귀일과 진공도리, 묘유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데 간혹 근기 따라 상황 따라 격외의 법문이 있다. 우리의 텅 빈 성품에 어찌 바닷물이 있고 고기가 있으랴마는 성품의 조화로 나타나는 우주만유는 바다도 있고 고기도 있고 형형색색의 불가사의한 현상세계를 이루는데 모두가 성품을 여읜 것은 하나도 없다.

우주만유가 그대로 음양상승의 이치 따라 조화덩어리인 천진불의 세계를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산에서 봉래정사로 가는 뱃길에 바닷물과 물고기는 자연스런 환경이다.

그런데 그 많은 바닷물을 낱낱이 되어보고 고기 수도 세어보았다는 것은 오히려 물과 고기라는 숫자에 착되지 말라는 격외의 말씀으로 이해가 된다.

우리의 환경을 구성하는 그 무엇에 우리의 마음이 착되는 순간 이미 우리는 그 판국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판국을 벗어나지 못하면 마음이 좁고 옹졸하여 사사로운 눈앞의 이익에 휘둘리게 되고 전체를 보지 못하며 원만한 지혜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바닷물을 낱낱이 되어봤다는 말씀은 오히려 착 없이 바다를 보고 착 없이 고기를 보라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된다.

요즘 뉴스를 가득 채우는 사회현상, 정치현실을 보면 종교의 본질인 도덕을 바로 세우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급선무임을 느낀다. 도덕을 바로 세우는 것이 나라와 사회를 살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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