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허물어 놓은 낙원을 다시 회복해
진정한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삶 속에서 경계마다
일상수행의 요법 1·2·3조에 대조해
삼학으로 공부하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생기는 시비이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요즈음 나는 5학년인 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경계를 통해 치열하게 공부하며 살고 있다.

어느 날 딸아이 담임으로부터 '호연이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는 일로 계속 거짓말을 거듭하는 바람에 아이들 앞에서 10분이나 엄청 혼을 내서 보냈다'는 전화를 받고 크게 요란해졌다. 우리 딸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교사를 비난하려는 마음들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한편, 거짓말을 할 때마다 야단을 맞지 않으려고 순간 순간 거짓말을 했을 딸의 장래를 생각하니 옆에 있으면 때려주고 싶을 만큼 절망적으로 요란해졌다.

한참동안 불안에 안절부절 하다가 갑자기 '앗! 경계다!'가 생각났다. '그래,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정신을 차리자'. 이 경계를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호연이와 함께 공부심으로 해결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삼학으로 공부했다. 정신수양, '잘했다 잘못했다'가 없는 마음을 챙겨 끌리지 않는 마음으로, "네가 오늘 학교에서 거짓말을 해서 선생님께서 혼내서 보냈다는 전화를 하셨던데 이번 기회에 엄마랑 함께 거짓말을 가지고 공부해보면 어떨까?"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호연아!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말이야? 나쁜 말이야?"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경계 따라 야단 안 맞으려고 저한테 유리하게 지어낸 말이에요", "그렇지! 그런 거짓말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제가 하는 말을 믿지 않게 되요. '양치기 소년'처럼요", "그래, 거짓말이 그 순간에는 너한테 득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면 결국에는 너에게 이로울까 해로울까?", "해로워요."

사리연구는 칠판에 대소유무로 나눠서 대화했다. "그럼 우리 대소유무로 거짓말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한번 공부해볼까?", 대자리는 거짓말 그 자체이고, 소자리는 자주하는 거짓말을 열거했다.

유무자리는 작업취사로 실천사항과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다. 아이는 대화를 통해 컴퓨터를 안보는 것에 대해서는 비밀번호를 걸어달라 했고, 거짓말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앗 경계다!'하고 알아차려서 말하는 공부를 약속했다. 또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솔직하게 시인하는 공부를 하겠다고 정했다.

거짓말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로 출발해서 강요하는 것과 거짓말은 '좋고 나쁘고가 없는데 다만 그 성질상 해독을 입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호연이는 "엄마 사랑해요, 야단치지 않고 이렇게 공부할 수 있게 해줘서"하며 펑펑 울었다. "그래, 호연아. 엄마도 네가 원래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경계 따라 하게 된 거짓말을 가지고 엄마와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너를 엄마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너무 너무 사랑한다"며 힘껏 껴안아 줬다.

그 후 나 또한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공부'와 '해야 할 공부'를 유무념으로 정해보았다. 하지 말아야 할 공부로는 만약 호연이가 또 거짓말을 한다할지라도 그때마다 마음을 챙겨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 그것으로 공부만 하겠다고 정했다.

해야 할 공부로는 호연이가 잘 지키는 것을 볼 때마다 정신·육신·물질로 적절하게 보상을 해 주겠다.

정신으로는 칭찬하고 격려해준다, 육신으로는 안아주고 포옹해준다, 물질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사 주겠다고 말이다.

얼마 전 큰 칠판을 하나 구입해 호연이하고 시비이해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하면 딸 아이도 좋고 나도 좋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를 대소유무로 연마하다보니 이제야 조금씩 대소유무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내가 늘 잊지 않고 표준잡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은 이미 은혜로 건설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허물어 놓은 낙원을 다시 회복하고, 진정 은혜 속에서 살아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삶속에서 경계마다 삼학으로 공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구경북교구 상인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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