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시선 끝까지 와 닿는 황금빛 들판, 길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 여유롭게 시선 둘 곳 많은 좋은 계절이다.

이 가을, 마음으로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영화로도 개봉돼 주목 받았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늙음'이 아닌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사실 주인공의 삶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았다. 시대가 그러했듯 그는 늘 누군가로부터 ●기고 붙잡히기를 반복했던 삶이다. 그러니 100세의 도피 역시 그의 삶에선 그다지 신선한 것이 되지 못한다. 다만 어떤 순간이더라도 그는 삶을 그 자체로 바라보았을 뿐, 더 큰 욕심을 부리거나 계획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도 잃지 않았던 여유와 유쾌함은 책을 읽는 독자의 경직된 생각을 톡톡 건드린다. 그리고 때때로 창문을 넘고 싶지만, 창틀을 부여잡고 있는 우리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우연적인 것일 뿐이라고 격려한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라고.

이보다 앞서 읽었던 책이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이다. 국내 '죽음학'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최준식 교수의 책이다. '삶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는 저자는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을 일러준다.

그가 말하는 '죽음'은 삶의 마지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생각하자는 것은 죽음 자체나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영혼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를 수없이 윤회하는 인간은 그래서 '지금 여기'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삶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질문이다. 이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된다.

며칠 전 완독했던 〈김수영을 위하여〉도 이야기하고 싶다. '시인 김수영의 삶과 철학을 사랑하는' 강신주가 쓴 책이다. 저자는 '김수영은 자유를 살아낸 시인이다'고 말한다. 김수영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인이 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철학자 강신주는 김수영을 불러낸다. 그리고 참여 시인이나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기억되는 김수영을 '우리 인문정신의 뿌리'라는 새로운 위치에 다시 세운다. 분명 읽는 이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책이지만 타성에 억눌리지 않는 용기를 생각케 한다. 이 책들 모두 본지 '책꾸러미'에 소개된 바 있다.

물들어가는 가을에 나누고 싶은 책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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