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각가 크기 203 mm x 226 mm, 시기 1917~1932년경
몽각가는 영모원에 있는 비닐하우스 상사원의 대산종사 유품들을 정리하여 대산종사 유물전시관을 만드는 과정 중 대산종사 장서 속에서 발견한 소태산대종사 친저이다. 소태산대종사는 대각 후에 함께한 책들을 불태웠다고 하는 말이 전해졌기 때문에 몽각가의 존재는 매우 특별한 것이다.

몽각가에는 가사 8편과 불법연구회취지서 등 14개 항목의 원불교 교리 관련 글이 수록되어 있었다. 몽각가에는 이미 알려진 가사 외에도 미발굴 가사 4편이 수록돼 있으며 교리에 관련된 내용도 다른 자료에서 볼 수 없는 교리 형성과정을 담고 있어서 원불교 초기 교단사 연구에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신명국 교무의 논문에 의하면 몽각가의 저술시기를 1917년으로부터 1932년 무렵까지로 보고 소태산대종사 가사는 저술시기에 따라 가사의 내용에 변화가 있으며 두 차례 이상에 걸쳐 소각도 진행되었다고 보고 있다.

소태산 가사의 소각은 교화방법의 변화 때문이라 논했으며 '가사를 통한 문헌적 감성적 교화방법에서 이론적 체계를 갖춘 논리적 이성적 방법으로써 전환한 것'이라 논했다.

몽각가는 처음 발견했을 때 참 특별한 감성이 있었던 유물이다. 오래된 한지의 고서란 느낌과 함께 손안에서 첫 장을 열자마자 들어온 멋지고 힘차게 쓰여진 성함 '이원화(李願華)'는 그 이후 나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기에 조사해보니 사타원 이원화는 대종사의 구도 과정 이전부터 지대한 영향이 있었던 중요한 인연이라고 생각되었다.

몽각가는 필사본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이 쓴 것이라 소장자라고 생각되는 사타원 이원화와의 관계도 알 수가 없다.

다만 1916년 소태산대종사는 대각을 이룬 후 많은 한시와 가사를 구술하여 이를 제자들에게 교재로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1920년경 이를 모두 불태우게 하여 〈대종경〉 전망품에 나와 있는 한시 몇 편과 1991년 깊은 샘에 이혜화가 밝힌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에서 9종의 가사만을 알 수 있다.

불법연구회 창건사에서 처음 알려진 〈법의대전〉 〈백일소〉 〈심적편〉등은 제목만 알려져 있고 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몽각가는 소태산의 미발굴 4편의 가사를 수록하고 있으므로 사료가치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몽각가 4편의 가사에는 초기 교리 형성과정이 담겨 있다. 교단이 100주년을 맞는 가운데 지금도 이미 늦은 단계의 제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소태산대종사의 몽각가에 실린, 늦게 발견되어 연구되지 않은 가사 4편에 담긴 초기 교단의 교리형성사를 소소히 분석하여 소태산대종사의 교리관과 교화방법이 새롭게 연구되고 조사돼야 한다.

이를 통해 소태산대종사 재세시 완벽한'불법시 생활인 생활시 불법인'의 초기 공동체 교화가 이해되었으면 원이 없겠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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