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 한 사람이 봉래 정사에 와서, 대종사께 뵈옵고 여쭙기를 "여래(如來)는 도솔천(兜率天)을 여의지 아니하시고 몸이 이미 왕궁가에 내리셨으며, 어머니의 태중에서 중생 제도하시기를 다 마치셨다 하였사오니 무슨 뜻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실상사(實相寺)를 여의지 아니하고 몸이 석두암(石頭庵)에 있으며, 비록 석두암에 있으나 드디어 중생 제도를 다 마쳤나니라."

10월말 경인교구바자가 열려 우리교당도 홍키위를 출품했다. 덕분에 홍키위가 비타민C가 풍부한 알카리성 과일임을 잘 알게 되었다.

당도가 높고 제주도에서 개발한 국산이라 일반키위에 비해 외국에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자긍심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과일은 씨를 심어야 과가 열리고 그 씨앗 속에는 이미 과일이 될 인자가 들어있다. 단지 그 씨가 발아할 환경, 물과 온도와 영양분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씨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고 어엿한 과일로 존재하기도 하듯이 우리의 성품도 마찬가지이다.

도솔천은 불보살들이 인도에 나기 전 머무는 천상계라 한다. 그런데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왕궁가에 내렸으며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를 마치쳤다하니 이렇게 황당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모태 중에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발하기 전의 상태, 성품의 진면목을 상징하는 말씀이고 중생제도를 마쳤다는 것도 이미 상없는 천지의 이치에 계합하여 제도를 마쳐도 마친 바가 없다는 말씀이니 결국 성품의 진면목을 상징하는 말씀들이다. 그러니 분별이 없는 그 자리에 어찌 선악이 있으며, 어찌 중생과 부처가 있으며 왕궁과 태중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발 나아가 대종사의 말씀을 받들면서 선승은 중생제도를 마쳤으니 빛을 돌이켜 그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라는 뜻이지 어떤 말도 그 자리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오직 성품의 평등함만이 천상천하에 가득하여 비되 비지 않은 진공묘유의 세계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원각성존 소태산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이 법문을 내렸을 당시 한 제자가 "보통급에 있되 대각여래위를 마쳤다"라고 대답을 했다.

어떤 제자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상당한 근기의 선진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 시원함에 머리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성품은 자연계의 씨앗과 같다. 씨앗이 적정한 습도와 온도, 영양분을 만나면 결실 또한 확연하듯이 내재해있는 성품이 좋은 환경이라는 연을 만나면 본성그대로 부처를 이룬다. 그 환경의 첫 번째가 스승이고 신심이다. 그러므로 도가의 생명은 신심인 것이다. 신이 있으면 스승의 법이 건네고 신이 없으면 분별망상 덩어리 중생으로 자기 업장조차 벗어나기 어렵다.

성품은 자연계 씨앗과 같아
좋은 환경은 스승과 신심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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