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 〈정전〉

인간은 진리 앞에 모두 평등, 본질적 계급 없어
동물적 삶을 멈추고 영적으로 깨어나 살아야


인간은 진리 앞에 모두 평등하기에 계급이란 본질적으로 없다. 인격을 수호하고 진리의 삶을 알아서 세상에 풀어쓰며 영적으로 진급이 되고 은혜와 함께할 따름이다.

인간은 동물이기에 앞서 영적 존재다. 사람의 몸이 영혼을 불러오기 보다는 영혼이 사람의 몸에 깃든다. 깃들 때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사람으로의 조건이 형성될 즈음이지만 때로는 바뀌기도 한다. 임산부가 자리와 마음가짐을 조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힘을 지닌 영혼이라야 깃들지만 부모와 형제 등과의 보이지 않는 조건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조율된다.

사람처럼 사회를 형성해서 살아가는 동물 중에 일본원숭이가 있다. 이 무리에서 서열이 높고 잘먹고 산다 하여도 인간이 바라보는 원숭이는 그저 원숭이에 지나지 않다. 인간의 삶도 조금 더 높은 관직과 인간의 관념이 만든 괜찮은 직업, 그리고 근사한 이성과 잘먹고 산다지만 삶의 굴레에서 한발 벗어나 통찰해 보면 그저 동물일 뿐이다.

결혼도 미룬 채 사업에 전념하여 성공한 기업가가 어느날 인생을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며 물어왔다. 돈 벌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운다 생각해도 시시하고, 사회에 희사하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할지라도 사회구성원 각자가 힘쓰지 않으면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없어 의미가 없단다. 한껏 살아보고 알게 된 삶의 회의라 힘이 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건강, 사랑, 돈, 명예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삶의 본질에 깨어있지 않은 성취욕에서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엔 삶의 방향을 잃어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기 마련이다.

동물로서의 인간이란 경주하는 개를 달리게 하기 위해서 그 앞에 먹을 것으로 유인하는 것처럼 종족 번식에 충실하도록 생명, 성, 사랑의 에너지를 심어 쫓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동물적 삶을 멈추고 영적으로 깨어나 살펴보면 사회의 어울림 속에서 영적인 의미를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모자람과 아픔 그리고 반목이 있는 삶의 숲속에서 헤쳐 살아가는 것으로 영적 의미를 찾아내고 인격을 닦아갈 때 영적 성숙함을 느끼게 된다.

영적으로 성숙하려는 의미는 인간의 삶뿐 아니라 인간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도 영적으로도 존재하여 더 크고 더 큰 영향력으로 삶을 디자인하고 사는 것처럼 유한하지 않다. 영적인 성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 오히려 100배 이상으로 효과가 있는만큼 인간의 삶이란 숲속에서 어울리며 수행하는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크고 매력적이다.

며칠 전 전무출신훈련에서 영롱한 느낌이 배어나는 선배에게 "사회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영혼을 여기에서 뵐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인사하니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성주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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