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56년 원불교개교반백년기념대회가 원광대학교에서 거행됐다.
개교반백년을 맞이하다
대산종법사가 취임 이후 원기 49~56년까지 추진한 개교반백년기념사업은 교세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교단 초창기부터 전해오는 '사오십년 결실(結實)이요 사오백년 결복(結福)이라'는 소태산대종사의 법문에 근거하여 원기49년에 '개교반백년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각종사업을 추진하며 교단의 총력을 집중했다.

정산종사가 추진했던 교서편찬사업을 대산 종법사는 취임 후 교서편찬을 독려했다. 그리하여 정산종사 열반 후 9개월 만에 〈정전〉과 〈대종경〉을 합한 〈원불교교전〉이 발간됐다. 그 후 〈불조요경〉, 〈원불교예전〉, 〈원불교성가〉, 〈정산종사법어〉, 〈원불교교사〉를 발간하고, 이때까지 발행한 각종 교서를 합쳐 원기62년 〈원불교전서〉를 발간했다.

▲ 원기59년 대산종사가 천도교 중앙총부를 방문해 양교간 종교화합과 우의를 다졌다.

세계종교연합운동을 전개하다
원기50년, 대산 종법사는 2기 종법사 취임법문에서 '하나의 세계'를 강조하고 종교연합운동을 주창하며 세계적인 종교연합기구의 창설을 염원했다. 종교연합운동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 천도교 최덕신 교령이 원기57년에 총부를 방문하고, 이에 대산 종법사도 원기59년에 서울 천도교 중앙총부를 답방하여 상호간 우호협력을 다졌다. 그 후 한국 6개종단이 '한국종교인협의회'를 구성하는데 원불교가 앞장서고 종교간 대화운동을 전개했다. 원기60년에는 세계종교연합기구 창설을 제안하고, 원기69년에 한국을 방문한 천주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만나 종교연합기구(UR) 창설을 제안하는 등 세계종교연합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교세를 확장하다
8년간의 반백년기념사업을 마무리하는 기념대회를 원기56년 건축사업인 총부 '영모전'의 낙성식 및 묘위봉안 봉고식, '정산종사 성탑' 제막식 등과, 소태산대종사의 대각개교기념 '만고일월비'를 영산성지 노루목에서 제막하고, 교단 최대행사로 진행했다. 개교반백년기념사업인 교화 3대목표 '연원달기·교화단 불리기·연원교당 만들기'를 8년간 추진, 교세가 2배 이상 확장 됐다.

교단 창립 3대를 열다
원기68년 11월, '원불교창립제2대 및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성업봉찬회'를 발족했다. 원기72년은 원불교 창립 제2대 말이 되는 해이고, 원기76년은 소태산대종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두 가지 기념사업은 전 교도의 정성을 결집한 보은사업으로 '대종사 성탑' 장엄과 '정산종사 성탑' 중건, 문화공연과 원불교 70년을 정신사적 면에서 정리하고, 원불교 72년사를 정리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으로 문화행사, 기념출판, 종교·학술행사, '소태산대종사기념관' 건축을 비롯한 건축사업, 은혜심기운동 전개 등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원기76년 4월, 중앙총부와 원광대학교 대운동장에서 5만여 명의 재가출가와 국내외 초청인사가 모인 기념대회 법훈식에서 주산 송도성 종사가 정식 대각여래위로 추존되었다. 대산 종법사는 교단 사상 최초로 생전 정식 대각여래위로 승급하여 대각여래위의 문을 열었다.

원불교 창립 제2대 말에 종사 16인, 대봉도 49인, 대호법 33인의 법훈을 서훈했는데 약 2년 반 만에 다시 소태산대종사 탄생100주년을 기념한 법위사정에서 종사 31인, 대봉도 8인, 대호법 34인이 법훈을 서훈했다.

이렇게 많은 법훈자가 배출된 것은 교단의 외형적 팽창에만 그치지 않고 공부하는 교단으로서 자리 매김하기 위해 재가·출가의 법위향상을 강조한 대산 종법사의 간절한 염원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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