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자유로운 늙은이가 하늘과 땅 사이를 하염없이 걷는구나. 삼계의 지옥을 벗어나고자 할진대 먼저 삼독심을 벗어버리게(如意自在翁 乾坤獨步行 欲脫三界獄 先除三毒心).'

양주 장포동의 한 초막에 머물던 대산종사는 해가 지면 깊은 선정에 머물고 해가 뜨면 문 밖에 나와 자연과 함께했다. 계곡을 따라 걸으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어 몸이 가벼워지고 계곡물에 들어가 몸을 담그면 일체 망념이 사라지는 식망현진(息妄顯眞)의 경지가 드러났다. 수승화강 식망현진은 좌선의 원리다. 몸에 있어 불기운은 내리고 물 기운은 오르며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다.

온 몸이 아파 처음에는 단 5분도 제대로 걷지 못하였으나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자 기적처럼 몸이 좋아지고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에 세월 가는 줄을 몰랐다. 산짐승이 와도 두려움이 없었으며 뱀과 같은 미물이 다가왔다가도 마음에 분별과 해심(害心)이 없으므로 제 스스로 물러갔다.

밤이면 노루며 사슴들이 내려와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선정에 들었다 하니 그 모습이 서가모니 부처님이 처음 법을 전했다는 녹야원(鹿野苑)같지 않았을런지. 천지자연이 곧 도(道)라 자연과의 친함이 만병을 낫게 하는 영약이 되고 만사 만리의 깨달음을 이루는 바탕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대산종사는 자신의 치병과 자연의 소요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장포동에서 쓴 이 시문을 살펴보자.

'한 번 장포에 든 것이 무슨 까닭인고? 소림 면벽은 내가 구하는 바 아니로다. 다만 한 생각으로 일만 경계를 거두어, 걸리고 막힘없는 채약사가 되리로다(一入藏浦何所事 少林面壁非吾求 但只一念攝萬境 任運騰騰採藥士)'

자신이 소림면벽을 자청한 것은 장차 일체중생을 구원하리라는 큰 원력의 과정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천만가지 경계를 한 생각에 수렴하여 만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는 자유자재의 큰 법기가 되기를 염원한 것이다. 전라도 원평에 내려와서도 그 생활은 한결같았지만 그 경지는 더욱 깊어만 갔다. 원평은 모악산을 배경으로 금산사를 비롯한 도꾼들이 많았다.

'천년 묵은 옛 절에 한 등불이 밝았는데 노승이 한가로이 앉아 물소리를 듣는구나. 마도 공하고 법도 공하고 공한 것 또한 공하여 마음도 맑고 경계도 맑고 꿈속마저 맑구나(千年古寺一燈明 老僧閑坐聽水聲 魔空法空空亦空 心淸境淸夢寐淸). 자운산에 귀 먹고 말 못하는 비구, 일이 다가옴에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내감에 마음이 사라지네(慈雲山中聾啞比丘 事來心現事去心滅). 높은 산 흐르는 물은 법왕의 몸이요, 풀과 꽃 피어나니 봄을 보는 눈이 새로워라. 이 사이 소식 찾아 묻지 마라. 한 생각 돌이킨 빛 뛰어나 빛나도다(山山水水法王身 草草花花春眼新 此間消息莫問覓 一念廻光逈超尖).'

하루는 모악산 정상에 올라 그 심경을 노래했다. '천산만수 선방 삼아 비로봉 정상을 나 홀로 거니네. 파랑새 지저귀고 꽃은 피어 웃는데 부드럽고 맑은 바람 끝이 없어라(千山萬水爲禪堂 毘盧頂上我獨行 靑鳥 花笑笑 無限淸風無限長).'

대산종사께서 어찌하여 자신의 일생 가운데 30대를 가장 열심히 정진했던 시기라 회고하였는지 알 수 있다. 시문들을 읽다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병을 핑계대고 수행을 게을리 하지는 않는가. 일을 핑계대고 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가. 산산이 선방이고 물물이 경전이요 비로자나 부처님의 몸인 것을.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공부를 행하는가.

<경남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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