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당 옥상에 올라 먼 바다를 보노라면 대산종사 생각이 불현 듯 인다. 대산종사는 정양차 부산 다대를 비롯하여 마산과 진영 , 하섬 등 해풍이 좋은 바닷가에서도 즐겨 머물렀다. 지금과 같이 약이 신통치 않았던 때라 공기가 맑은 바닷가가 폐의 치료에 좋을 거라는 권유를 받았을 것이다. 병든 몸을 이끌고 산천을 주유하면서도 생사를 초월하는 적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환중에 만난 많은 재가의 인연들이 교단 초창기 교화에 큰 힘이 되었다.

'푸른 바다 수만리 텅 비었으니, 나도 없고 너도 없고 하늘도 없어라. 바위 위에 우뚝 앉아 선정에 드니, 눈앞에 시방세계 환히 드러났구나(滄海萬里虛 無我無人天 巖上一化身 眼前十方現).'

'소슬한 바람 바다 만 리 밖에서 불어오고, 밝은 달 구름 속에서 푸른 하늘을 열도다. 병든 스님 한가로이 앉아 뱃노래를 들으니, 천당 지옥 다 함께 흔적조차 없어라(淸風海外萬里來 明月雲中九天開 病僧閑坐聽棹歌 天堂地獄總成滅).'

시문 곳곳에는 병을 얻은 수행자가 등장하고 산과 바다를 소요하며 생사를 뛰어넘는 출중한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한편으로 짠하고 한편으로 그 정진심이 부럽다.

'맑은 바람 나부껴 시방을 맑히고, 지혜의 빛 높이 솟아 삼세를 밝히누나.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백년을 속아 사니, 만겁 다생에 괴롭고 씁쓸한 정일러라(淸風飄飄十方淸 慧日騰騰三世明 虛世欺日瞞百年 萬劫多生苦辛情).'

기적처럼 중병을 이겨내고 교정원장 중책을 맡아서도 정진은 쉬지 않았다. 틈틈이 그 심경을 선시와 글로 적어 환후 중에 있는 정산종사를 도와 법풍을 진작했다. 그 중에도 심원송(心願頌)은 오늘날 곡에 붙여져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되었다.

'간절히 원하옵건대, 내 손길 닿는 곳, 내 발길 머무는 곳, 내 음성 메아리치는 곳, 내 마음 향하는 곳마다, 우리 모두 다 함께 성불 제중 인연이 되어지이다(願爲 手之撫處 足之踏處 音之響處 心之念處 皆共成佛濟衆之緣).' 그 서원이 사무쳐 우리들은 지금 대산종사의 존호만 들어도, 옛 적 희미한 사진 모습만 뵈어도 풀어졌던 마음이 묶어지는 전설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큰 성현들의 중생을 제도하는 자비방편은 가히 헤아리기 어렵다.

'나 없음에 나 아님이 없고, 내 집 없음에 천하가 내 집이로다. 이것이 나의 참 집이요 참 고향이니, 삼세의 모든 성자와 부처님께서 늘 머물러 사시는 곳이로다(無我無不我 無家無不家 是卽眞家鄕 聖聖佛佛居).'

'하늘이 길고 땅이 오랜 겁의 끝과 시작에 무한 동력이 끊임없이 움직이더라. 대종사께서 한결같이 법륜을 굴리시니 부처와 성인들이 법통을 잇도다(天長地久劫末初 無限動力無限動 本師如如轉法輪 佛佛聖聖繼法統).'

나를 놓아버려서 나 아님이 없고 내 집이 따로 없어서 천하를 내 집 삼으니 모든 부처님과 성인들의 삶이 모름지기 이와 같다. 이로써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법통을 잇고 일원대도의 대법륜을 굴리는 것이니 그 자비의 품안에 든 우리의 행복 됨이 크다.

대산종사는 정산종사의 뒤를 이어 법통을 이었으나 그 정진 적공은 한결같았다. 스스로를 소동(小童) 소제(小弟) 소자(小子)로 자리매김하면서 함께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모셨던 선배, 동지 그리고 후진들에게 법풍 진작에 힘을 쏟았다. '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의 머리를 열어 이 법을 넣어주고 싶다'던 모습이 선하다. 내가 출가하여 대학 1학년 때 송대에서 받들었던 법문이다.

<경남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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