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봉래 정사에 계실 때에 백학명 선사가 내왕하며 간혹 격외(格外)의 설(說)로써 성리 이야기하기를 즐기는지라 대종사 하루는 짐짓 동녀 이청풍에게 몇 말씀 일러두시었더니, 다음 날 선사가 월명암으로부터 오는지라, 대종사 맞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저 방아 찧고 있는 청풍이가 도가 익어 가는 것 같도다"하시니, 선사가 곧 청풍의 앞으로 가서 큰 소리로 "발을 옮기지 말고 도를 일러오라"하니, 청풍이 엄연히 서서 절굿대를 공중에 쳐 들고 있는지라, 선사가 말 없이 방으로 들어오니, 청풍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오거늘, 선사 말하되 "저 벽에 걸린 달마를 걸릴 수 있겠느냐" 청풍이 말하기를 "있습니다" 선사 말하기를 "걸려 보라" 청풍이 일어서서 서너 걸음 걸어가니, 선사 무릎을 치며 십삼세각이라고 허락하는지라, 대종사 그 광경을 보시고 미소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견성하는 것이 말에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하나, 앞으로는 그런 방식을 가지고는 견성의 인가(印可)를 내리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백학명 선사는 법호가 학명으로 당대 부안 내소사 주지로 있다가 월명암에 머물러 나중에 내장사주지를 역임,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대종사와 교유하며 성리이야기를 하고 견성인가를 통해 과거 불교의 인가방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안이정 종사는 〈의두 성리의 연마〉에서 대종사 당대 훈련시 매 훈련 끝 무렵 3일 동안 밤마다 직접 성리문답을 주관, 문답했던 내용은 과거 불교의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학명선사가 한 방법은 말없이 몸을 멈추거나 몸을 움직이거나 하여 여래선과 조사선의 진경을 표현했다면 대종사는 여래선과 조사선을 겸하되 반드시 문답감정을 통하여 언어로써 의리선으로 확인했다. 대오 분상에서 제자들이 말하기 전에 이미 알았지만 다시 문답을 통하여 확철한 깨침을 얻을 수 있도록 기운을 몰아줬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말하는데 막힘이 없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표현에 막힘이 많다.

이렇게 문답을 통해 스스로 막힐 때 우리의 영지는 깊은 의두를 마음에 심게 되며 알아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답법을 통해 막힐 때가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보는 기회가 되며 강력한 의두를 심는 계기가 되기에 문답법의 효과는 참으로 큰 것이다. 그래서 대산종사께서는 교무들에게 설교를 할 때 혼자만 말하지 말고 문답법을 통해 교도들과 질문을 주고 받으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한 교도와 성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신문에 나오는 성리담이 별로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교도의 성리이야기를 들어보니 왜 그런지가 이해가 되었다. 본인은 성리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진공에 대한 체험이 없었던 것이다.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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