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지키는 신앙의 삶, 성격도 평판도 변해

은자녀 결의로 20년간 예비교무 성장 후원
위력은 틀림없이 나타나…기쁘게 기다릴 뿐

불신과 탐욕의 시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기본만 지킨다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권선징악이며 인과응보, 책임과 의리, 우정과 사랑, 이런 기본들이 언젠가부터 당연하지 않게 됐고 이 어지러운 세상의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참으로 어려운 말 '기본만 지키자', 이문교당 해산 박원웅(66·海山 朴圓雄) 교도회장을 만났을 때 그 말이 떠올랐다. "다 일러주셨으니 그 말씀만 지키면 된다"는 신앙인. 그는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담담했으며 강직했다.

"원불교 오니 교전에 세세하게 다 써있더라고요. 좋은 말씀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어떻게 살고 공부해야하는지도요. 특히 계문을 봤더니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습니다. 아침저녁기도며 좌선, 훈련은 또 어떻게 임해야하는지 다 나와있으니 따르기 참 좋았죠."

대쪽같은 성품이 진리를 만나면 이런 모습일까. 원기71년 입교한 그는 법명을 받자마자 주인정신으로 활동했다. 초반에야 다들 '꽃발신심인가' 했지만, 그에게는 그런 분별마저도 없었다.

그런 그를 유심히 지켜본 김덕관 교무가 어느날 그와 아내를 불렀다. "은자녀를 맺어보시면 어떨까요?"하는 말에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기76년 당시 교학과 학생에게 후원을 시작해 최근 몇 년 전까지 총 4명의 예비교무의 성장을 도왔다. 20여년 가까이 매달 꽤 큰 금액을 보내면서도 아깝다 생각을 안했다. "한때 월급의 30%가 은자녀 장학금이었다"고 회고하는 그. 그러나 '이 분들이 교무되어 세상 건지는 큰 역할 해주시겠지'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의 바람대로, 은자녀들은 현재 교단 곳곳에서 큰 역할을 하는 교무들로 성장했다.

"늘 위력을 실감하니 공가 일에 소홀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가장 크게 변했거든요. 전에는 좀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어요. 알고보니 주변 사람들이 저를 무서워했다더라고요. 이제는요? 제가 정년을 훌쩍 넘겨서도 현직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다 평판 덕분이지요."

그의 나이 66세. 퇴직을 생각할 때마다 '그 분 없으면 안된다'고 만류하는 건 단지 같은 회사 동료들만이 아니다. 종종 대립하는 경쟁업체에서까지도 그의 퇴직에 '결사반대'를 외치는 묘한 상황도 연출된다. 그의 책임감과 의리를 봤기 때문이자 늘 도닥여주고 가르침을 전하며 멘토가 되어 준 덕분이다.

"다들 어떻게 이렇게 오래 있냐고 물어요. 그럼 두가지를 얘기합니다. 하나는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는 언행일치요, 또 하나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대화할 때 늘 법문을 풀어 이야기 하는 게 더 큰 비결이죠. 일이 안 풀려 상의를 해올 때도, 관계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그에 맞는 법문이 떠올라요. 그럼 예화도 전하며 우리 법을 전합니다. 그러다보니 '정확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쌓이더라고요."

30년동안 그 험하다는(?) 건축 분야 영업직에 있으면서도 술·담배 한번 안해온 그. 영업 원칙도 확실하고 명료하다. 상생을 바탕 위에 뱉은 말은 꼭 지키는 믿음으로 영업하는 것이다.

"출퇴근 하면서 차에서 늘 기원독경을 들어요. 그리고 매일 내 가족, 도반 뿐 아니라 회사 동료들을 위해서도, 경쟁업체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위력은 틀림없이 나타나요. 우리들은 기쁘게 기다릴 뿐이지요."

아름드리나무 뿌리처럼 깊고 넓게 뻗어있는 신앙의 힘. 그에게는 직장 뿐 아니라 가정 역시 신앙의 현장이었다.

"우리집에선 가정사보다 교당일이 먼저죠. 사가 일이 어디 공가 일보다 먼저일 수 있나요. 집 청소는 건너뛰어도 토요일마다 하는 교당 청소는 빠진 적 없다고 얘기하는걸요."

아내 유타원 이덕원 교도는 96년 서울교구 봉공회 '10년의 대상', 원기97년 교역자대회 공익부문 우수상 수상으로, 교단 봉공계의 산증인이요 역사로 꼽힌다. 입교하면서 시작한 봉공에 책임과 의리를 다해온 결과이며, 신앙이 우선이라는 부부의 뚝심이 있어서 가능했다.

부부는 한 마음이었는데, 자녀들이 서운하다 말한 적 있다. 그러던 딸이 이제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교당에 나오는 일원가족의 주인으로 자랐다.

"딸이 '이제는 엄마 아빠를 이해한다'고 했을 때 참 기뻤지요. 사윗감 데려왔을때도 '교당 다닌다면 허락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결혼을 했거든요." 또한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대령 진급을 앞두고 있는 아들 명철은 정순일 교무의 사위가 되어, 일원가족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3각형으로 모난 성격이 16각형 정도로, 180도에는 조금 못 미치는 160~170도로 둥그러졌다는 박원웅 교도. 그는 남은 생 신앙을 이어가며 '이대로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지금이 더없이 행복하고 완벽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감사하고 은혜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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