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마당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을 3주째 쓸지 않고 그냥 두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도 잠시 발길을 돌려 은행나무 앞쪽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오가는 학생들도 나무 벤치에 앉아 보기도 하고 은행잎을 날려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한다. 은행잎 위에서 엄마와 함께 즐거워하는 어린 아이들 소리도 정겹다. 동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교당에 발을 들여 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은행잎으로 인해 마음이 움직이는가 보다. 은행잎을 통해 전에 알지 못했던 감흥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잎들이 큰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까 말이다.

하루에도 가끔씩 마당에 나가 은행잎들을 한동안 쳐다보면 즐거움 이면에 그 속에 숨은 뜻을 찾게 된다. 은행잎처럼 죽음의 시기에 다가올 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멋쩍은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 준비에 대해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산종사법어〉 거래편 1장에서는 "잠시 외출을 하려 해도 준비가 있어야 하거늘 준비 없이 죽음을 당하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태어나는 길도 어려우나 죽음의 길은 더 어렵나니 평소 생사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사IN Live에 '죽음을 끌어 안으라 그 안에 삶이 있으니'란 기사를 읽다보면 법문 말씀이 더 명확해 진다. EBS 〈다큐 프라임〉 '데스(Death)' 제작진이 취재를 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죽음에 대해 배우면, 삶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잘 죽는 준비를 하는 것이 계속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고 볼 수 있다.

얼마전 지리산국제훈련원에서 기도에 매진하고 있는 이양신 원로교무와 함께 나의 아버지를 찾아 보기로 약속을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부친의 기도를 위해서다. 마침 약속한 날 비가 온 관계로 진주교무와 부교무도 기꺼이 동행했다.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서니 부친이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이 원로교무의 주례로 기도를 하며 영주, 일원상서원문, 참회문, 청정주를 염송했다. 부친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합장한 손을 흐트리지 않았다. 옆에서 뵈니 전 보다 얼굴이 맑아 보였다. 아마도 편안한 마음으로 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기도를 마치고 부친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다. 부친은 차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합장을 했다. 차가 출발하자 나중에는 손을 흔들었다. 교당에 도착하니 부친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고했다, 건강 조심해라"는 내용이었다.

부친의 생활을 통해 지금 살아 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지 않는가. 4분 56초 분량의 삼성생명 광고는 이 점을 잘 제시하고 있다.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는 영상을 보면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후회하기 보다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준비를 하는 것이 공부인의 자세라 보여진다.

평소 떠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준비는 얼마나 되었는가를 자주 연마하면서 살다보면 죽음이 닥쳐도 여여한 마음이 될수 있다. 그래야 남은 몇 달, 몇 년 이든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다가올 새 봄의 푸름을 알게 되고 영생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공부인들 중에는 죽음 준비 공부를 멀리하고, 안 보려고 하고, 안 들으려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 요인이다. 이처럼 죽음이 남의 일처럼 들릴 때는 내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 부족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꾸준히 찾다 보면 해답이 보인다. 그 해답은 생사일여 공부다. 생을 갈무리 하듯 1년중 마지막 달인 12월을 의미있게 보내는 공부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꽃피는 봄날은 그냥 맞아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후회 하기보다는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 공부인의 자세


<신현교당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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