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자 여쭙기를 "견성을 하면 어찌 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주 만물의 본래 이치를 알게 되고 목수가 잣대와 먹줄을 얻은 것 같이 되나니라."

한 교도가 교당에 와서 "요즘 유명한 사람의 강의 동영상을 봤는데 재밌게 잘 하더라"고 말했다. 원불교에 와서도 한 강사다고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궁금하여 강의를 들어봤다. 견성체험하기, 깨어있기, 호흡잘하기 등을 강조하며 쉬우면서도 사통오달로 명쾌하게 성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강의 요지는 우리 표현으로 '정신을 꼭 집어서 드러내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의 전체를 들은 것이 아니지만 '종교에 투신하지 않고서도 저렇게 성리를 장난감 갖고 놀듯이 이야기하는 근기가 있구나'하는 감상이 들었다.

아울러 저렇게 마음대조를 하면 경계를 당해 공을 관하는 힘이 좀 약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왜냐하면 전문적인 11과목으로 삼학배양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살면서도 삼학으로 삼대력을 얻지 못하면 그 결과는 같기에 성리를 체로 삼대력 얻는 원칙적인 공부에 공을 들여야 된다는 생각이다.

목수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집을 지을 때 측량하는 도구로 잣대와 먹줄은 필수요건이 된다. 잣대와 먹줄이 없다면 어떻게 측량을 할 수 있으며, 하나의 오차도 없이 어떻게 정밀하고 정확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겠는가! 이를 다른 표현으로 하면 '버선을 만들려는 사람이 버선 본을 얻은 것과 같다'고도 했다.

견성이란 성불하고자 하는 공부인에게 있어 부처의 본래 면목을 아는 것이니 성불의 본을 얻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산종사는 "견성을 한 사람은 일체가 평등하고 차별심이 없지만 견성을 못한 사람은 중생심에 떨어지기 쉬워서 양반이니, 상놈이니, 지자니, 우자니 하여 계급과 차별을 하는 것이 다르다"라고 밝혔다.

또한 성품을 본 사람은 "심량이 광대하고 무변대해하여 아무런 착심이 없기에 어느 누구와도 깊은 원진을 맺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즉 견성을 한 것과 못한 것의 차이를 쉽게 알게 해 준 것이다.

견성을 한다는 것은 모르고 지내던 마음의 소종래를 안다는 것이며, 만물과 나와의 관계, 만물과의 윤기를 알게됨으로 장님이 눈을 뜨고 새롭게 전개되는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하겠다.

대종사는 부촉품 최후법문 원문에서 "자고로 수도하는 사람이 견성을 해야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아야 인과인연법도 알아지고 취사심도 생겨나며 친소심도 없어져서 자타없는 삼매행자가 된다. 비컨대 우리가 견성을 하는 것은 대목이 집을 짓는데 먹줄과 잣대 같아서 인도를 밟아가는데 없지 못할 최상승법이니 어서 부지런히 배우고 닦아서 견성도인 되기에 노력하라"고 법문했다.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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