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83년 10월의 어느 멋진날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요일 날 나들이나 다녀오자'는 고 김서강 직장 선배의 제안에 일요일 아침 약속장소로 나가보았더니 서신교당 성지순례 버스 2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그 선배가 원불교 교도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선배께서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존경하는 분이였기에 선배를 믿고 따라 찾아간 곳은 정산종사께서 탄생한 성주성지였다.

전주에서 성주성지까지 가는 동안 한길상 교도회장이 차량 안전기도를 했는데 목탁을 치면서 독경을 하는 모습을 보고 혹시 사이비종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됐다.

성지에 도착하고 탄생가에 들어가서 합장을 한뒤 이상한 주문(영주)를 외우며 '정산종사의 기운을 받아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더욱 더 이상했다.

정산종사 탄생가에서 나오자 탄생가 토방에 원불교 책자 무인판매대가 있었다. 원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궁금해 판매대에서 〈원불교전서〉를 꺼내 펼쳐본 순간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종교 같은데 성경의 '예수님 가라사대…'를 흉내 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유료로 판매하는 〈원불교전서〉 대신 무료로 배포하는 원불교 기초입문서를 챙겨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후 꼼꼼히 읽어봤다. 그제서야 원불교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당시 서신교당 김도심 교무를 만나 뵙고 원기83년 10월23일 입교원서를 작성한 후 교도가 되었다. 그 후 가족 모두를 원불교에 인도하여 일원가족이 됐다.

입교한 후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도 4종의무와 계문을 하나하나 지켜가고 교전쓰기를 하다보니 불평이나 원망이 많았던 모습에서 감사하는 생활로 바뀌게 되었으며, 그렇게 되니 가정은 물론 직장에서도 신뢰 받고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당시 강력반에서 근무하던 터라 일요일 날 법회출석이 어려운 환경임에도 김 교무의 설법에 반해 원기84년 말까지 1년 넘는 기간동안 한번도 법회를 빠지지 않았다.

김 교무는 서신교당 3단 중앙을 맡아 달라는 당부와 함께 〈한울안 한 이치에〉, 〈원불교 통신강좌〉, 〈공타원 종사 문집〉 등 3권의 책을 주며 주보 편집까지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원기85년부터 주보 작성을 하면서 원불교에 대해 기초부터 공부하게 되었고 소태산대종사의 은혜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대종사께 보은하는 길은 인연 있는 사람들을 원불교로 인도해 영생길을 밝혀 주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가족을 중심으로 친척, 동료, 친구는 물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원불교를 알리고 입교시켜 원기85년 입교연원상을 받았다.

원기86년 중앙총부 신정절 기념식 때 전국에서 모인 1500여 대중 앞에서 교화사례담을 발표했다. 사례담을 마치자 당시 종법사였던 좌산상사께서는 "앞으로 원무하라"고 했다. 원무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였음에도 "네"라고 대답을 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정읍시 북면 화해리 화해교당 부근에 집터를 마련해 주택을 신축을 하고 원기94년부터는 화해교당에 출석하게 됐다. 최지원 교무의 추천으로 원불교에 입교한지 10년 만에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졌던 아름다운 만남, 성스러운 인연의 성지 화해에서 재가교역자의 길을 가기위한 원무사령을 받았다.

<화해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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