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원불교신문에 원기100년을 앞두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라는 기사를 보고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한편 교단교화의 침체를 생각하니 '지금 이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교단이나 교구 그리고 교당의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과거와 같은 교화열정을 생각해보면 2000년 대법회(1만명동참)를 준비하기 위해 5년간 재가 출가교역자들이 온 정성 다 바쳐 일했던 한 사람으로 작금의 교화 답보 및 침체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기사에서 지적하였듯이 지도자가 바뀌면 진행해오던 교화정책도 다 바뀌고 모든 업무가 종결되며 새로운 교화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나름대로 각 교당의 교화기획위원과 만남을 통해 교화사례들을 발표하고, 형제처럼 가까워져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 쯤이면 모든 것이 인사정책으로 클로즈업 됐다. 원기85년 대법회(1만3천명)참석도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끊임없이 교화를 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교구장을 비롯한 교구교무와 청운회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기에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일회성으로 끝나는 교화 행사가 될까봐 뒤이어 '삼하나운동본부' 발대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때 필자가 집행위원장이 되어 좌산종법사으로부터 본부기와 교화기금(2천만원)을 직접 받게 되었다. 아마도 재가가 교화운동 일환으로 큰 기금을 받게 된 것도 교단사에 거의 드문걸로 알고 있다. 즉 교화의 주체는 재가라는 소신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각 교당 개벽축구단 창설, 청소년교화, 대학생교화 활동 등에 교화기금이 활용 되었으며 각 교당 교화기획위원이 구성되어 교구에서 매월 만나 교화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오다가 인사정책에 의해 교구장 바뀔 무렵에 삼하나운동 만큼은 어떤 분이 와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그 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로인한 좌절감과 불신등으로 모두가 힘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인사정책에는 신중하고 충분한 지역 정서를 고려해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교화운동이 과거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되살아나야 하겠다.

필자는 교화운동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부산원광신협 이사장을 맡았으며 대량교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는 200명 신입교도를 입회(조합원) 시켰으며 올해도 50명 이상 입교를 시키고 있다. 교단의 기관으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출석교도로 어떻게 어어 가느냐가 관건이다. 어떻게 하면 신입교도가 법회에 출석할 수 있도록 교구 및 교당과의 원활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겠다. 지금의 나의 화두인 것이다.

교단에서도 초창기 저축조합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신협의 위상을 더 한층 강화하길 기대한다. 지금의 지역 및 단체신협으로써 역할은 한계가 있다. 교단 금융기관의 연합결성이 필요한 것 같다.

예를 든다면 교단 기관을 보면 재정산업부와 군종교구에는 신협계좌가 개설되어 있으나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와 중앙총부 주요부서에는 신협 계좌도 없는 실정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한없이 슬픈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교단은 초창기를 늘 강조하고 어려운 고비때마다 초심을 강조하는데 작금의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타 금융기관도 열어 놓으면서 우리 신협을 홀대하는 것은 아닌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대량 교화를 할 수 있는 곳이 교단의 기관이다. 현장교화는 기필코 기관이 앞장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금융기관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교화는 소극적이 아니고 적극적이어야 하겠다. 우리 재가 교도들은 스스로 하는 교화보다 시키면 하는 수동적교화가 더 문제인 것이다.

원불교 100년을 맞이하면서 교화운동이 정착되지 않고는 우리교단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교법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려면 교화는 더욱 절실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전 교도는 우리 교단을 지키는 교화대불공에 앞장서야 하겠다.

<부산원광신용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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