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선원에서 김기천의 성리 설하는 것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오늘 내가 비몽 사몽간에 여의주(如意珠)를 얻어 삼산(三山)에게 주었더니 받아먹고 즉시로 환골탈태하는 것을 보았는데, 실지로 삼산의 성리 설하는 것을 들으니 정신이 상쾌하다"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법은 사정(私情)으로 주고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저의 혜안이 열려야 그 법을 받아들이나니, 용(龍)은 여의주를 얻어야 조화가 나고 수도인은 성품을 보아서 단련할 줄 알아야 능력이 나나니라"하시니, 문정규 여쭙기를 "저희가 일찍부터 정산을 존경하옵는데 그도 견성을 하였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집을 짓는데 큰 집과 작은 집을 다 같이 착수는 하였으나, 한 달에 끝날 집도 있고 혹은 일년 혹은 수년을 걸려야 끝날 집도 있듯이 정산은 시일이 좀 걸리리라."

단회를 마치고 단원들과 함께 동해바다를 보러 갔다. 넓고 시원한 검푸른 바다의 씩씩한 기상에 다가오는 새해 교화를 저런 기상으로 해야겠다는 감상이 들었다.

더불어 깊고 넓은 바닷물이 지구표면에 붙어서 만유인력으로 우주허공에 스스로 떠 있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묘유덩어리로 보였다.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묘유 아님이 없기에 진리의 위력이야말로 능대능소하고 만물을 통해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어 절로 경외심이 든다.

대종사께서 '성리는 눈치 채도 삼대력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라고 하신 법문은 성품을 보아서 단련할 줄 알아야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과 뜻이 상통한다.

단련하는 것! 이것이 무엇인가. 수학시절부터 나도 모르게 대조가 되었던 법문은 교의품 7장 일원의 진리 요약과 정산종사 견성오단이었다. 오랜 시간 그 법문에 비춰보며 나의 정도를 가늠해 볼 때마다 위 두 가지 법문이 만성현의 궤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성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표준삼아야 할 내용이 정전 무시선법의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으라'는 말씀이라 생각된다.

성리 공부인이 진공으로 체를 삼지 않는다면 아직 근본을 모르는 것이고 묘유로 용을 삼지 않는다면 아직 토가 덜 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리를 알고 단련하여 능력이 나도록 원을 품었다면, 반드시 진공으로 체를 삼기위해 염불, 좌선, 기도의 일심적공이 필요하고 묘유로 용을 삼기위해 사리연구와 작업취사의 삼학공부에 대정진을 해야한다.

세상의 이런 저런 견성법은 밑심이 부족한 우리에게 금방이라도 견성을 해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나 견성도 천층만층이요, 수년이 걸려야 끝날 집이 있다는 말씀은 단견에 떨어지지 말라는 말씀 같다.

교단백주년을 맞이하여 오직 대적공 대적공하라는 대산종사의 법문이 더욱 깊이 다가온다.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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