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교대학 이케미 초류 교수
한·일 학술교류 새로운 이정표

▲ 1973년부터 시작된 원광대와 일본 불교대학의 학술교류는 불교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오른쪽 두번째 이케미 초류 교수)
국제불교문화학술대회가 23회째를 맞으며 한국과 일본 불교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제1회 '불교의 현대화 방향(1973)'을 주제로 시작한 원광대와 일본 불교대학의 학술교류는 20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는 등 한일 양국 불교 학술대회에서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0월31일, 기조강연에 나선 일본 불교대학교 이케미 초류(池見澄隆) 교수는 '중세 둔세자(遁世者)들에게 보이는 자기와 세간 : 무주 〈잡담집〉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일본에서 불교가 가장 번성했던 중세를 시작으로 전근대 전반에서 사회는 '세간(世間)'이라 불렸으며, 자기를 포함한 인간관계의 환경을 의미했다"며 "한편 세간이라는 원래 '출세간(出世間)' 곧 출가에 대한 불교용어로 명예를 추구하고 이익을 도모하는 거리로 여겨져 왔다. 출가는 그 세간을 초월해 벗어나야만 하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어 "둔세자란 재출가자(再出家者)라고도 말하여지는 것으로, 출가세계가 현실에서 내포하고 있는 세간성(世間性) 조차도 넘어서야 할 것을 지향해 가는 승려들의 타입이다"며 "곧 승려이면서도 히에잔(比叡山)이나 코후쿠지(興福寺) 등의 대형사찰에 소속되지 않고, 승려로서의 입신출세를 바라지 않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처지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는 잉세키(院政期)로부터 가마쿠라기(鎌倉期)를 통해 이어 온 둔세의 정신사(精神史) 속에서도 오와리(尾張)지역의 쵸보지(長母寺)에서 후반의 생애를 지내면서 많은 설화문학을 저술한 무주(無住, 1226~1312)의 술회 가운데서 세간과의 갈등이나 체념 속에서 습득한 지혜를 통해 그의 삶의 방식의 의미를 고찰했다.

그는 무주의 〈잡담집〉을 통해 한 시대의 어떤 개성을 보려하기 보다는 한 시대의 어떤 유형을 발견하는 것에 노력했다. 그는 "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사유나 감성의 일반적 일상적 경향을 심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본고에서 말하는 사상은 한없이 그에 가깝다"며 "시대의 표충에 나타났던 결정(結晶)의 도(度)와 체계성이 높았던 그러한 의미에서 세련된 사상이 아니라 시대의 심층에서 숨쉬는 심성의 광맥을 발굴하는 것을 지향하는 시도는 보다 긴 시간에 걸쳐서 조명했을 때 비로소 그 광맥 자체의 완만한 변화와 함께 구극적으로는 일본의 사상, 문화의 밑바닥까지 통한다"고 설명했다.

무주의 교학(敎學) 면에서 그는 "독창적인 연구자가 아니라 독실하면서 범용한 학습자에 머물고 있다. 저작자로 무주는 교설자로서 법어나 설화의 형태로 불법을 말하는 경우와 한 사람의 승려, 둔세자로서 자기의 내면을 토로하는 경우의 두 가지 양태로 나눈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입장에서 나오는 언설의 근거는 각각 교리적 이념과 사적정념(私的情念)이라는 양태로 구별했고, 특히 후자의 측면에 중점을 둠으로써 심리적 조건을 중시하면서 미시적인 분석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잡담집〉 법어를 자기인식과 세간감각으로 나눠 논문을 전개했다. 그는 무주의 사상을 호넨(法然), 신란(親鸞)이나 죠우케이(貞慶), 니치렌(日蓮) 등 문언과 병렬적으로 서술하며 자기인식 및 인간관계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무주의 〈잡담집〉이 부정(否定)의 논리 발달사 위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무주의 삶의 방식에는 근대인이 존중하는 사회에 대한 적극적, 능동적인 압력은 전혀 없다"며 "하지만 대립이나 모순을 융화시키려고 하는 심성은 오히려 근대주의의 한계를 통지(通知)하는 것이 아닐까. 위태롭고 유약한 자기상(自己像)이나 마음에 오염된 세간 상을 그려내는 것은 독자(受容者)에 대해 오히려 공감과 평온함을 줄 것이다. 이곳에서 둔세자 무주의 사회적 존재 의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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