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인, 성품 깨치는 것 최고 목표

近世鍛鍊之士가 往往而外求華飾으로 宣念科呪하고 懷慾稱修하여 空度歲月하나니 豈入於眞境哉아 蓋夫至道는 深窈나 不在其他라 人能弘道하면 道不遠人이니 朱子曰 道也者는 不可須臾去身이라하고 子思曰 率性之謂道라하고 曾子曰 知止而後에 有定하고 定而後能靜하고 靜而後에 能安하고 安而後에 能慮하고 慮而後에 能得이라하니 此皆自明其明德之事也라

我旣有此明德하니 豈不修練而明之乎아 旣知明德之稟我하고 知修練之在我하면 則修而得之가 惟在我一心이니 豈區區於外物하고 孜孜於外飾하야 以欲定靜而得眞道哉아

(직역) 근세에 단련하는 선비가 자주 밖으로 갖추어 화려하게 꾸며놓고 의식을 베풀고 주문을 생각하며 욕심을 품고 수행한다고 하되 한갓 세월만 보내니 어찌 참다운 경지에 들겠는가. 생각해보면 무릇 지극한 도는 깊고 깊어 그 다른 데에 있지 않나니 사람이 도를 크게 행하면 도가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다.

내게 이미 이 명덕이 있으니 어찌 닦아 단련하지 않고 이를 밝히겠는가. 이미 명덕이 나에게 품부되어 있는 줄을 알고 수련이 나에게 있는 줄을 알면 닦아서 이를 얻는 것이 오직 내 한 마음에 있는 것이라, 어찌 외물에 구구하고 외식에 바쁘게 하는 것으로 정정하고자 하여 참 도를 얻으려 하는가.

(부연)주자(朱子)는 '도라는 것은 잠시도 몸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라' 했고, 자사(子思)는 '성품을 따르는 것이 도'라 했으며, 증자(曾子)는 '그칠 줄을 안 뒤에 정함이 있고, 정이 있은 뒤에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모두 스스로 그 명덕(明德)(朱子註: 虛靈不昧하여 萬理를 갖추어 萬事를 감응함)을 밝히는 일이다.

명덕에 들어가는 공부

삼산종사는 〈철자집〉에서 "명덕(일원상)에 들어가는 공부는 삼학 팔조 공부니 지도가 간명하고 율도가 원융하다(入德工夫 三大綱領 取捨八條 指導簡明 律道圓融)"고 하였다.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 수양 연구 취사를 닦아 나아가면 일원상의 도에 든다고 한 것이다.

참 도를 이루려는 사람은 일원상의 공적영지의 마음을 보전하려는 것이지, 바깥 화려함에 두지 않는다. 정산종사는 8장 총명강요장에서 밖으로 화려하게 꾸며놓고 의식을 배풀고 주문을 생각하며 욕심을 품고 수행하는 것을 외도의 정정이라고 하였다.

영주의 의미

도는 성품을 따르는 것이라 하였다(率性之謂道). 정산종사는 신과 기를 대성(大性)이라 하였다. 사람의 몸은 신령한 기운으로 되어있다. 정산종사는 '영주'에서 천지의 신령한 기운이 내 마음에 머물러 있고(天地靈氣我心定),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내 마음에 통해 있다(萬事如意我心通)고 하였다.

정산종사는 천지의 신령한 기운이 내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만사인 인간사 모든 시비이해가 내 마음에 통한다고 하였다.

부처와 성품과 선

성품인 신령한 기운은 천지만물과 나에게 모두 있어 서로 통하고 있다. 달마대사는 "불은 영각이고 영각은 마음이며 마음은 성품이고 성품은 도며 도는 선이라 하였다. 선은 성품을 보는 것으로 성품을 보지 않으면 선이 아니라 하였다. 선은 보통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다(〈禪家龜鑑〉).

단전은 곧 도

선가(仙家)에서는 도를 단이라 했다. 성품을 보려면 단전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단전 자리로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을 밝히고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하단전에 뜻과 기운을 모으고 호흡을 고르는 단전주 선법을 가장 좋은 선법이라고 하였다(〈불교정전〉).

하단전은 태일혈이 있는 단전 자리이다. 마음을 단전에 둔다는 것은 마음을 도에 두는 것이다.

원불교 수행에서는 활동을 할 때는 대의를 따라 그 일 그 일에 충실하고 마음을 쉴 때는 단전에 쉬어야 한다고 한다.

원불교 삼학과 증자 가르침

증자는 '마음을 그칠 줄을 알고, 머무를 줄을 알고, 고요하게 할 줄을 알고, 편안하게 할 줄을 알고, 생각할 줄을 알고, 취사로 행동할 줄을 알아야 된다'고 하였다. 멈추고 생각하고 취사하는 원불교 삼학병진 수행은 이와 상통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수양연구요론〉에서 공부 순서를 초심→ 발심→ 입지→ 수양→ 연구→ 취사→ 세밀→ 입정의 순서로 하게 했다. 입정은 공적영지의 자성 광명이 잠시도 몸에서 떠나지 않는 경지라 하였다. 참다운 공덕은 자성을 떠나지 않고 행하는 덕이라(不離自性曰功 應用無念曰德) 한다. 곧 자성을 떠나지 않는 공부로 자성의 광명이 나타나야 경계를 응용하여도 분별에 착심이 없다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마음공부 잘 하여 새 세상의 주인 되라'고 하였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 자기 성품을 깨달아 공적영지의 광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 다른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됨을 부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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