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로 현지소비·문화 존중

▲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구조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공정여행 상품이 확산되고 있다.
봉사활동여행 볼룬투어·여행학교 트렌드

캄보디아 톤레삽호수 위 배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배에서 먹고 자며 모든 이동을 배로 하는 수상가옥촌, 그 위에서도 아이는 글자를 배우고, 강아지는 자라며, 철마다 살오른 물고기가 밥상에 올려진다.

흔히 보트로 흘깃 보기만 했던 그들의 진짜 삶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발전기로 만든 불빛 아래 현지 가족들과 먹는 진짜 캄보디아 밥상, 꼬마들과의 손짓발짓 의사소통, 새벽 물안개 산책 등. 캄보디아의 속살 그대로에 빠져드는 이런 여행, 물론 낭만만큼이나 불편함이야 있다지만, 이런 경험이야말로 여행의 참 묘미와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그런 경험으로 현지에 도움을 주고 환경을 보호하며 문화를 존중할 수 있다면.
▲ 캄보디아는 전 세계 공정여행자들의 홈스테이가 빠르게 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누구나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은 시대, 톤레삽호수 수상가옥촌 홈스테이 같은 '진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다국적호텔에서 자고 한국음식 먹고 강제쇼핑이나 당하는 불편함에 대한 반발이요, 현지에 대가를 지불하고 윤리와 책임감을 가지는 공정여행(Fair-Travel)에 대한 요구다.

'지역경제에 최선의 기여, 여행자에 최고의 기회, 자연에 최소의 영향'을 추구하는 공정여행(Fair-Travel). 자리이타와 상생의 여행버전인 공정여행의 실제, 상품을 알아보자.

세계 최초의 공정여행 전문회사는 2001년 설립된 '리스폰서블 트래블(Responsible Travel)'이다. 이 곳이 보유하고 있는 3천여개의 여행상품들은 듣기만 해도 재밌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실현이다. 환경을 위해 비행기 대신 다른 교통수단으로 여행하는 프랑스 남부 자전거여행, 스페인 알리칸테 도보여행, 스코틀랜드 카약여행 등이 있다. 베트남의 요리나 인도의 요가를 배우러 가는 여행도 있으며, 전 세계의 문화유적을 '청소하러' 다니는 여행, 여행비 일부를 해당 지역의 천연 동·식물 보호에 기부하는 여행도 있다. 얼마나 많이 찍고 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가치를 실현하느냐가 이 상품들의 의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응으로, 창립 이후 매출이 매년 4배씩, 순이익이 90% 증가하며 현재는 세계 200여개국 3천여 개 여행 상품을 판매, 매출액은 1천억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2007년 말 평화운동단체 이매진피스가 시작한 '공정여행 페스티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페스티벌에서 결집된 힘으로 2009년 최초의 공정여행사 '여행협동조합MAP'을 열었다. 그해 9월 '트래블러스맵'으로 사명을 바꾸고, 2010년 최초로 여행부문 사회적기업으로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후 경험자들의 입소문과 함께 사회적기업, 청년기업 확산 붐을 타고 공감만세, 착한여행, 공정여행풍덩, 거위의꿈 등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캄보디아 톤레삽호수 홈스테이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정여행 상품 중 하나다. 흔히 패키지상품이 3박5일 상품에 앙코르와트와 압살라민속쇼, 안마를 포함하고 톤레삽에서는 한두시간 보트를 타는데, 이는 현지인들의 인권문제나 환경오염, 그리고 사생활이 침해당하면서도 정작 소득은 돌아오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공정여행은 '구경'이 아닌 '존중'을 선택한다. 1박2일동안 함께 지내며 밥도 먹고 문화도 배우는 것이다. 또한 공정여행은 여행비용을 최대한 현지에 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형여행사의 3박5일 일정 중 식사는 9번, 그 중 호텔식 3번, 한식 4번으로 현지식은 2회 뿐이다. 현지식 2번 중 1회 역시 한국인이 하는 수끼(샤브샤브) 식당으로 전체 식비의 극히 일부만이 현지에 돌아가고 있다. 공정여행은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직업재활센터와 연계된 곳이나 유기농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쓰는 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 태국 치앙마이 코끼리 구조단체에서 코끼리를 치료하는 봉사자들. 공정여행과 봉사활동을 합친 볼룬투어의 인기가 높다.

이 밖에도 공정여행 상품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히말라야에서 여행자의 짐을 지는 포터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트레킹, 체코 요리교실에서 쿠키를 굽는 동유럽, 게으름을 테마로 한 이탈리아 등이 인기가 많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수박 겉핥기'가 아닌 탐구와 토론을 이어 가는 서유럽 인문학 여행이나 안나푸르나 트레킹 상품도 방학 중 특별한 경험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호응이 높다.

공정여행 상품이 많아지면서 생소한 개념도 등장했다. '볼룬투어'는 봉사활동(Volunteer)과 여행(Tour)을 합친 말로, 태국 여행 중 코끼리 구조 단체에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거나 라오스의 한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며 개발과 협력 방안을 찾고 실천해보는 상품 등이다.

필리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학습을 하며 평화도서관, 청년센터 등을 방문, 일일 어린이집 교사가 되어보는 '여행학교'도 여행을 통해 대안적인 삶의 기술을 배우는 새로운 트렌드다.

흔히 '셀프'로만 생각했던 국내 여행상품도 활발하다. 곰배령에서 자연을 실컷 즐기는 어린이 방학여행, 옛 이야기를 따라 걷는 울진 금강 소나무 숲길, 전통 장인들의 공방을 잇는 서울 북촌 투어 등 당일에서 3박4일까지 다양하다. 언뜻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상품들의 특징은 현지인이나 지역공동체가 운영하는 민박이나 홈스테이를 우선으로 하며, 지역의 자연이나 문화를 거의 원형에 가깝게 경험하고 존중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정여행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오해도 존재한다. 흔히 '공정여행은 비싸다'고 여기는 것이다. 최근 패키지의 허와 실이 민낯으로 드러나며 많이들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북경 4일 50만원', '태국 6일 60만원' 등의 거짓 정보에 낚이는 경우가 많다. 이 말도 안되는 가격에는 공정여행에는 없는 '숨겨진 비용'이 있다. 애초에 적자로 시작되는 여행은 각종 옵션과 라텍스, 상황버섯 구매 등 커미션이 최대 80%에 이르는 '불법 쇼핑 비용'으로 보충되는 것이다. 실제로 불법 쇼핑이 없는 유럽의 경우, 대형여행사의 패키지비용이나 공정여행비용이 차이가 없다.

소비자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민첩해진다. 공정여행이 단지 윤리적이며 책임감있는 '착한' 여행일 뿐 아니라, 남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과 잊지못할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정여행 해본 사람은 패키지여행 못한다'는 일설처럼 '공정여행중독자'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해외여행 트렌드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패키지 여행상품의 소비자 만족도는 57.2%인데 반해, 공정여행의 만족도는 90%에 달했다. 착하면서 의미도 있고, 내게는 추억과 존중을, 상대에게는 교육이나 자활의 기회를 주는 공정여행. 원기100년의 시작은 희망찬 내일을 위한 공정여행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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