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 〈정전〉

법신불 신앙은 마음가짐, 기도, 좌선
사은 신앙은 삶과 보은 의미해


일원은 법신불이라 하여 '원불교는 법신불 신앙인가?' 생각을 했는데 〈정전〉에서는 '일원상 신앙'이라 하며 또 '사은 신앙'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처처불상이니 사사불공하란다. 어찌 보면 좋은 말을 나열해 놓은 듯한데 하나로 꿰어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원불교의 신앙이 가슴속으로 들어와 자리하는 게 아니라 왠지 이지적으로 이해를 하여야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이 가운데 가장 대립되는 부분이 법신불과 사은이다. 법신불은 보신불과 화신불과 구별이 되는 것이고 사은은 나타난 자리로서 화신불에 속한다. 어느 때는 법신불 신앙이라 하고 어느 때는 화신불 신앙이라고 하는 격이니 헷갈릴 법도 하다.

원불교 신앙의 기본은 법신불 신앙이다. 사은은 나타난 자리라 변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신앙의 대상보다는 사실불공이 주가 되는 신앙이다. 법신불이 사은에 내재해 있기에 법신불 신앙만 잘해도 처처불상 사사불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법신불 즉 진리 신앙과 사은의 사실 불공이 아우른다면 내외가 겸전한 원만한 신앙이 된다.

물이 변하여 거품이 되고 때로는 얼음이 되기도 한다. 물을 맛있게 정화시키려면 거품이나 얼음보다는 액체인 물에서의 작업이 더 낫다. 불공 들이는 것도 가지가지의 형상을 나타낸 것보다는 법신불에 불공을 들여야 효과가 있다.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을 때도 성품에 들었다가 나오면 고칠 것이 없다. 제대로 발현시키기만 하면 된다. 마음에서 바로잡는 것은 방향이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는 마음에서 바로잡는 것이 효율적이다. 야구선수 가운데 타자가 공을 쳐내는데 방향이 좋지 않아서 수비수에 막히거나 심리적으로 적응되지 않아서 게임이 풀리지 않다면, 마음가짐이나 경험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기본 자세, 배트 스피드, 기술적인 면에서 현저하게 떨어지면 기본훈련에서 바로잡아야 하듯이 말이다.

법신불 신앙으로 마음가짐, 기도, 좌선이 있다면 사은 신앙은 삶과 보은이다. 법신불 신앙에 좌선이 들어가는 이유는 기도의 극치가 합일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도 기도의 극치를 묵상기도로 여긴다. 무념무상이 되어 발하는 마음은 진리와 하나 되어서 마음을 드리우는 것과 같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도 좌선에 관심이 많다.

교리공부를 어느 정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꾸 가르는 것보다 하나로 어우러져서 한 맛으로 이어져야 한다. 나누어 구분하는 것이 개념 잡는데는 필요하나 구분 과정에서 손실된 인식의 개념으로 다시 합한들 온전하지 못하다. 이때는 진리 그 자체에서 다시 보려고 해야 손실 없는 인식이 될 수 있다. 원불교 신앙은 법신불 사은이다. 이 마음속에는 우주의 영혼과 몸을 입체적인 하나로 인식하는 명호이자 일원상이 되어야 온전하다.

<성주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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