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사경만한 공부법 없습니다"

인고의 10년, 법문사경으로 공부심 체득
망백사경팀, 서로 독려하며 자신성업봉찬 앞장

눈발이 내리는 한겨울이다. 익산성지도 하얀 눈발이 도처에 내려앉는다. 10년 법문사경으로 교당 교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교도들이 경산종법사를 배알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중앙총부 정문 옆에 있는 마음&마음 카페에 나란히 여섯 부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교도를 인터뷰할지가 막막해 팀에서 추천해달라고 의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교당 성산 고영찬(70·省山 高永讚) 교도가 추천됐다.

그는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렇게 나왔다고 서두를 꺼냈다.

"법문사경을 하게 된 계기는 강남교당 인터넷 카페에 사경팀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원기89년 말 박오진 교도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경팀은 다음해 1월1일부터 원기100년까지 10년간 법문사경으로 정진하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이름도 망백(望百)사경팀이 됐습니다."

여섯 부부가 자발적으로 뜻을 합하면서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항해를 시작했다. 그가 10년 동안 한 땀 한 땀 써온 사경노트는 어느새 16권에 달할 정도다. 노트에다 사경을 하다 보니 선호하는 펜도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귀띔한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쉬지 않고 사경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문공부라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계속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하루에 교전 2~4페이지를 목표로 쓰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게을러지고, 핑계가 많아져요. 어떤 때는 목표 분량을 맞추기 위해 벼락치기도 했답니다."

장기 레이스에 사경정진을 위해 망백사경팀이 고안해 낸 것은 매월 만나 사경 정도를 체크하고 공부한 내용을 주제로 회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사경의 묘미는 한자 한자 하얀 백지에 쓰면서 법문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터넷 사경과 달리 아날로그 방식의 손글씨는 느리지만 법문의 울림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더불어 매월 여섯커플이 만나 연마한 법문을 주제로 회화하면서 혜두가 굉장히 단련됐습니다." 혼자만의 사경이 아니라 따로 똑같이 하는 공동유무념인 셈이다.

"무엇보다 원기100년을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신심, 공심, 공부심이 법문사경을 통해 깊어졌고, 넓어졌습니다. 대종사님의 법이 얼마나 위대한 법인지를 몸소 깨달았습니다. 그냥 건성으로 법문을 읽을 때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두터워진 법연과 스스로 만족한 공부는 덤이었습니다."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 시작했던 법문사경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이모작의 인생을 힘차게 항해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사경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사경한 법문에 비춰 회화를 하다보면 부부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어떤 때는 남편이나 부인에 대한 사적인 지적이나 충고 등이 언급되지만 결국은 부부애가 깊어지는 방향으로 귀결이 됩니다. 법문에 마음을 비추기 때문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는 것이죠." 부부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교법이 생활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관계로 감각감상이나 심신작용처리건 등이 공부거리로 나오기 때문이다.

"사경한 여러 경전 중에 참회문을 공부하면서 경전 중의 경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달간 참회문만 쓴 적이 있는데 명문장이면서 신앙심을 우러나게 하더군요. 사경공부는 신입교도나 교당을 다닌 지 2~3년 된 교도에게 신심 나게 하는 좋은 공부법이라 생각됩니다. 최근 강남교당은 신입교도만 100명이 넘어섰거든요. 사경공부를 하면 쉽고 빠르게 교법에 물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원남교당 청년회 출신인 그는 오랜 세월 교당에 다녔지만 사경공부로 법문의 진면목을 체득했다고 말할 정도로 사경 예찬론자다. 인터뷰 도중에 안 사실은 그의 어머니가 대종사의 막내 은녀(박효진 종사)였다는 점이다. 박 종사가 남원 홈실 죽산 박 씨 집안에서 태어나 창평 고 씨와 인연을 맺고, 이들을 원불교로 인도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원기100년을 맞아 자신성업봉찬은 법문사경 공부로, 교화대불공은 강남교당 건축불사로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교당 전 교도가 서울교화의 틀을 어떻게든 바꿔보겠다는 신념을 갖고 매일 기도하며 건축불사에 매달리고 있죠. 서울교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교당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오로지 교당 건축불사에 전력투구하는 그의 노력이 먼 미래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나씩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주변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재가 출가교도의 똘똘 뭉쳐진 원력은 그와의 인터뷰 내내 그대로 전해졌다. 10년을 준비한 미래, 다시 100년 이후를 설계한 서울교화가 자신성업봉찬과 교화대불공이라는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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