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대지 허공법계가 마음의 나타난 바이니, 우주의 모든 부처가 내 손안에 구슬이다. 대소유무에 막힘이 없으면 만물의 터럭 끝에서 조차 자유자재로 한가로이 족하다. (大地虛空心所現 十方諸佛手中珠 頭頭物物皆無碍 法界毛端自在遊)'

이 게송은 대산종사 오도게(悟道偈)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지허공(大地虛空)은 산하대지 허공법계의 준말이고, 이를 또 다르게 축약하면 법계(法界)다.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마음의 나타난 바라는 것이다. 일원(一圓)의 내역을 말하자면 사은(四恩)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삼라만상이라 했다. 일원이 곧 제불중생의 마음이니 삼라만상은 마음의 사진이고 그림자다.

해골 물을 마시고 대도(大道)를 얻었다는 원효대사도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이라 삼계가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이요, 만법은 오직 식(識)의 알음알이라고 했다. 마음 밖에 따로 현상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일어나면 현상이 드러나고 마음이 소멸하면 일체 법계가 사라지니 마음 외에 다른 것을 구할 것이 무엇인가? 화려한 닫집과 무덤이 다 마음의 작용이고 맑은 물과 해골물이 다 마음의 장난이니 더 이상 속을 일이 없다.

이 진리를 알면 삼세일체의 부처님 깨달음이 손바닥에 구슬이요 부처와 마주 손잡고 그 대열에 합류한다. 이 진리를 알면 시방삼계가 다 나의 집안임을 알고 육도 사생이 다 하나의 몸임을 안다는 뜻이다.

불교의 화엄에서도 4법계를 말하여 진여(眞如)의 이(理)와 현상의 사(事)와 이사(理事)와 사사(事事)의 법계가 중중무진(重重無盡) 원융무애(圓融無碍)하여 하나의 가없는 연기(緣起)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마음과 현상, 참과 티끌이 다르지 않다. 하나가 곧 열이요 열이 곧 하나며, 하나 속에 온갖 것이 들어 있고 온갖 것 이 곧 하나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것과 있고 없는 것이 서로 융통(融通)하여 장애되지 않고, 영겁(永劫)과 찰나(刹那),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어긋나지 않는 것이니 세상 만물이 끝없이 얽히고 설키어 하나일 뿐이다.

두두(頭頭)는 머리 또는 시초라는 뜻이니 화엄의 이(理)요 대소유무의 대(大)를 말하는 것이니, '우주만유의 본체'가 된다. 법계의 체성(體性)은 말과 글로 이르지 못한다. 무무(無(無)라 없고 없으며 없다는 것도 없다. 한 생각이 쉬면 제 스스로 드러나는 한 물건이 있으니 이는 사량으로 알 수 없는 것으로 다만 관조(觀照)로써 얻을 뿐이다. 물물(物物)은 다양한 사물이니 화엄의 사(事)요 대소유무의 소(小)를 일컫는 것으로 '우주만유가 형형색색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걸림이 없다는 것이니 대(大)와 소(小)에 능란해서 만물이 공(空)하여 하나인 줄도 알지마는 만물이 또한 제각각인 소식에도 듬직하여 허무하지 않다. 만물의 끝자락에 서서도 자유자재로 노는 경지가 발랄하고 유쾌하다. 초창기 불법연구회 마당을 쓸고 부엌에서 밥 짓는 일에도 천하에 대한 꿈과 도(道)가 풍성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크고 작음과 높고 낮음을 따라 분별이 요동쳐 도가 아득히 멀다.

한 마음 열리면 만물은 다 나의 부리는 바요 나는 세상의 우뚝 선 주인공이다. 대장부가 대도를 발원하고 수행을 일삼을진데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창밖에 나무는 앙상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지금 삶이 족(足)한가? 행복한가? 마음이 묻고 있다. 근본 발원이 절실하다.

<경남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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