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리도 많은 세월을….'

또 나이 하나를 더 보태며 되뇌이는 혼잣말이다. 그리고 얼핏 '남은 시간들'을 꼽아보다가 그만 화들짝 놀라 셈을 멈추고 만다. 어느새 노루꼬리만큼 짧아진 '남은 시간들'과 함께 지난날의 보잘 것 없는 족적들을 다시 확인하면서다.

돌아보면 정말 깊은 생각 없이 많은 세월을 살아 온 것 같다. 때가 되면 다시 지나간 계절이 돌아오듯, 내 인생의 시간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다시 되돌아와 줄 것처럼 참으로 아무 개념 없이 그저 세월만 축내 온 듯싶어지니, 더 없이 먹은 나이가 미워지며 당장이라도 모조리 토해내 되돌려주고 싶어진다.

오래 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던 때의 소회가 떠오른다. 아마 그때도 마음갈피가 지금처럼 엇갈리고 있었던 것 같다. 종착역에 거의 다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가 과연 저 '시베리아 횡단'을 제대로 해온 것인지 헷갈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맨 처음 여행에 나섰을 때에는 꽤나 설레는 마음으로 꿈의 시베리아 설원에 몰두해 있었다.

그러나 하루같이 반복되는 하얀 여정 탓이었을까, 얼떨결에 예의 그 종착역에 이르고 나서야 마침내 내가 과연 무엇을 보고 왔는지, 진정한 시베리아의 심연(深淵)에는 제대로 가까이 다가가보지도 못한 채, 마냥 겉모습에만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아쉬움과 자책에 휩싸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직도 저 천고(千古)의 설원풍광들이 더 남아 기다려줄 줄 알았는데….' 하는 뒤늦은 회한과 함께 말이다.

바람이 차가워서일까? 한 참을 가도 산길은 인기척이 없다. 길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눈에 띄게 깡말라 보인다. 매일같이 찾아 오르는 곳이건만, 처음 찾아와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진다. 눈이라도 내려 주려나! 하늘이 손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와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저 아래 도심 쪽 거리는 벌써부터 저녁 불빛들이 환하다. 요즘 경기들이 말이 아니라는데…. 아무쪼록 새해엔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좀 더 어깨를 펼 때도 되었건만, 지난 한 해 무척이나 힘들었을 저들의 발걸음들을 생각하면 가슴 밑바닥이 더욱 시려온다. '결국, 매사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이치대로 그렇게 오가는 것이거늘 ….'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독백이 또 저만큼 나오려다가 만다.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온다. 종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간 멀리 잊고 지내던 종소리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가깝게 들려온다. 더 울려올세라 귀를 키워 세워보지만, 산자락 뒤로 돌아 넘어간 종소리는 다시 되돌아올 줄을 모른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해본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를 돌아 스치는 바람결이 코끝을 시리게 한다. 오늘 낮엔 잠시 보이던 햇살이 그렇게 따스하던 걸…. 녹다가 남은 길 위의 눈어름 조각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빠각빠각' 다시 얼어붙는 소리를 낸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나절은 더 돌아 걸었을 터이지만, 오늘은 조금 일찍 서둘러 내려가기로 마음을 바꾼다. 아직 새해를 맞는 자기약속의 장문(掌文) 같은 것 하나도 제대로 새겨놓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음인가?

'심심창해수(心深滄海水)' - 오늘 신년 법회에서 내가 받은 올해의 수행 법구다. 비록 한 가지 작은 생각, 조그만 언어동작 하나라도 저 동해수(東海水) 깊은 물처럼, 저 곤륜산(崑崙山) 준령처럼 깊고 신중하고 무겁게 하여 살라는 명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올해는 상(祥), 선(善), 미(美), 희(犧)를 뜻하는 길상(吉祥) 청양(靑羊)의 해다. 그간 먹어온 나이에, 그리고 남은 생의 잔명에 누가 덜 되도록 깊은 마음으로 힘써 정진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항상 조용한 묵언수행을 쉬지 않는 저 산길, 나의 선 도량 친구(나무)들에게도 더욱 친근한 도반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소리죽여 약속 해본다.

상서로움 상징인 청양의 해를 맞이해
올해는 깊은 바닷물처럼 신중하게 살기를 염원

<분당교당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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