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 〈정전〉

'나는 중생'이라는 생각은 마음의 자살만큼 안 좋아
여래나 중생 성품은 한가지로 누구든지 회복할 수 있어


'제불조사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

일원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모든 부처와 계파를 세운 수장이든, 보통 사람과 살아있는 무리든, 모두가 마음의 근본에서는 같은 줄 안다. 제불과 조사를 나눴지만 한 마디로 깨달은 사람을 지칭하고, 범부와 중생은 깨닫지 못한 사람을 지칭한다. 그리고 성품은 마음의 근본을 일컫는다. 종합하면 깨닫거나 깨닫지 못한 사람이든 마음의 근본은 같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부처'라고 하면 보통 '석가'라는 인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부처라는 본 뜻은 인물이 아닌 깨닫은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면 부처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 또한 오해의 소지가 많다. 깨달은 즉시 여래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깨달은 즉시 여래가 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 견성을 한 즉시 여래가 된 사람과 견성은 했지만 아직 마음과 행동이 미진하여 수행 적공으로 여래의 인격을 이뤄가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부처와 깨달은 사람의 쓰임새가 다름을 알면 헷갈리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본래 마음인 성품에서는 여래나 중생이 같은데 마음을 쓰는 데에 있어서는 여래나 중생이 다르다. 여래는 성품에서 마음을 발현시켜 사용하는 반면, 중생은 관념과 욕심과 잘못된 습관에 왜곡되어 사용한다. 여래와 중생의 성품은 같은만큼 누구든지 성품을 회복하여 사용하면 누구나 여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본래부터 중생'이라는 자포자기의 마음을 지니거나 강요 받기도 한다. '나는 본래부터 중생'이라는 마음이 겸허함인 것 같지만 스스로 진리성을 없애는 마음의 자살과 같은만큼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이다.

성품은 발하기 이전의 마음이다. 꿈도 없이 깊이 잠자는 상태라고 여겨도 좋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처음 발하는 마음이 인식, 구분, 이름, 느낌, 선호(이름을 포함한 객관적 분별군), 접촉, 자료(데이터), 사유(지혜), 선택(경험을 포함한 차별군의 시작, 서원), 경험, 습관(수행과 보은), 의식(의식의 수준), 인격, 인생, 인품(삶의 품격)으로 이어진다.

성품에서 있는 사물을 그대로 인식하고 그 다름도 구분하는 쪽으로 전개된다. 구분하는 것에 이름이라는 기호가 붙어지며 느낌을 이루고 접촉된 자료가 모아지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사유하기에 이르러 집약된 바람직하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선택한 것에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습관으로 자리 잡는데 아울러 의식도 형성된다. 이 습관과 의식이 결부되어 인격을 낳는데 인격으로의 삶에서 인생의 방향과 향유하는 것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또 한번 숙성되며 삶의 품격인 인품으로 자리매김이 되어간다. 이렇게 성품에서 순연하게 발현시켜 마음 쓰는 사람이 여래다.

<성주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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