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대불공

▲ 이혜선 원로교무(왼쪽)는 원기73년 11월 상록수 교역자상을 수상했다.
자선 복지분야에서 일을 해 보겠다는 마음을 정하고 공익부장에게 "그러면 그 일을 제가 해 보겠습니다. 비록 힘은 없지만 대종사님께서 염원하신 사업이니 마음을 다해 대종사님을 모시고 뛰어보겠습니다. 대종사님께서도 바다를 막고 펄을 논으로 만들었는데 그러한 심경으로 일천정성을 다 해보겠습니다"하고 심경을 밝혔다.

이후 원기66년 9월 이리자선원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빈손으로 40kg 쌀 세 포와 보리 두 포를 빌려다 놓고 자선원을 시작하게 됐다. 원생들 옷은 얻어다 입히고 채소밭을 일구며 살았다. 마동에서 어렵게 3년 계약으로 수리를 해서 살다가 돈을 모으고 바자를 통해서 터전 마련을 위한 여력을 만들어 갔다.

대산종사께서 알봉 터를 주셔서 자선원이 옮겨갈 수 있었다. 나무를 베어내고 알봉 묘지에 있던 많은 묘들을 이장하는데 어려움도 많았다. 그렇지만 원생들과 함께 자선원을 직접 짓고 이불 보따리와 각종 집기 비품 등을 이삿짐 손수레에 실어 날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선원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다보니 어느 사이 자선원에 근무한 지도 17년이 됐다. 자선원 근무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이후 영산성지 수도원에서 법타원 김이현 원로교무, 규타원 최규학 원로교무와 1년 동안 하숙생활을 하게 됐다. 이듬해 퇴임 원로교무 여러분이 거주하게 되면서 수도원 살림을 시작하게 됐다.

학생들 살던 기숙사를 비워 놓았기에 손 볼 곳이 많았다. 매일 주위 풀을 매고, 집 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정식 수도원으로 개원을 하고 살고있었다. 원로교무들이 교당에서 근무했던 교무들이라 인연도 많았다. 또 수도원에 공양도 끊이지 않았다. 그 공양을 다 받으려니 빚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수도원 앞 낮으막한 산 주변의 묵은 밭을 개간했다. 개간한 밭에 채소를 길렀다. 수도원에서 먹는 채소는 이 밭에서 공급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사지 않고도 먹을 수가 있었다.

내 일생을 돌아보니 사심 없이 원불교 들어와서 무슨 책임을 맡든지 그 일 그 일에 대종사님 언답 막은 그 정신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또 어느 곳에 근무지가 정해지든 창립정신에 바탕해 스승님들의 말씀 받들고 살아와서 그런지 무서운 것이 없었다.

어느 한 인연이 내게 준 시를 소개하고 싶다. 제목은 '호밋 자루에 실은 영혼이여'다.

정산 스승님 시봉에 시름 잊고/ 배움의 기회 뒤로 하던 세월/ 이 회상 주춧돌 받쳐온/ 호밋자루에 실은 영혼이여.

행려자와 17년 풍성한 터전 이루고/ 안식 위에 수도원 오셨음이여/ 풀밭에 빈집 꽃밭으로 푸성귀 공양하사/ 칠십에 수도자 지혜 빛나다/ 애원의 기도 은혜의 바다 출렁인다.

이혜선 원로교무는 원기73년 11월 상록수 교역자상을 수상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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