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용어
원불교 최초의 교당은 '구간도실'로 원기3년(1918) 12월에 소태산대종사와 구인선진이 직접 옥녀봉 아래에 지었다. 이후 원기8년 서중안이 구간도실 이축을 발의해 그해 10월 범현동 기슭에 새 터를 정해 목조 초가 10간 1동과 8간 2동의 영산원을 건설했다.
원기25년(1940) 4월 창립 제1대 제2회 결산 총회기 당년도 말 사업보고에서 제1회기(원기13년3월) 이전에 설립된 영산·익산(총부·1924)·서울(1926)·신흥(1927)과, 원기14년(1929) 마령, 원기15년 좌포·원평, 16년 하단, 19년 남부민, 20년(1935) 전주·대판(일본), 21년 관촌·초량, 22년 대마·신하·용신·개성, 23년 남원·이리, 24년 운봉·화해 25년(1940) 대덕·호곡 등 도합23개소 교당이 차례로 설립한 것으로 보고됐다.
소태산대종사는 조선불교혁신론(〈대종경〉서품18)을 통해 출가생활 본위로 된 교리와 제도의 과거 불교를 일반 사회 생활하는 사람에 맞도록 혁신해야 한다는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주장했다. 대종사는 "종교라 하는 것은 인간을 상대로 된 것인데, 인간이 없는 산간에 교당을 두었으니 세간 생활에 분망한 사람들이 어느 여가에 세간을 벗어나서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라며 "수도하는 처소도 신자를 따라 어느 곳이든지 설치해야 한다"고 새시대에 맞는 교당의 역할을 정의했다.
정리=정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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