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서품 18장에 소태산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출가공부인의 의식생활도 각자의 처지를 따라 직업을 갖게 하라는 법문을 연마할 때가 되었다.

농촌의 경제가 돌아가는 30년 전에는 그런대로 순수교화가 살아났지만 농촌이 피폐된 지금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교역자 각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 원업과 부업을 적절하게 펼쳐가야 하겠다.

원업은 교당과 기관에서 고유의 업무를 실행함이다. 교당에서는 교도숫자를 늘리고 그들의 신앙과 수행을 지도해서 복전을 쌓는 헌공금을 활용하는 것이고 기관에서는 인건비를 받는 것이다. 기관에서는 학력과 자격증에 기준하여 임금이 형성되기에 최저생계비를 웃도는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교당에서의 경제이다. 교당은 현실적으로 70명 이상의 교도가 확보돼야 현실적인 경제활동이 용이하다.

가장 좋은 부업은 사회복지시설이다. 교당 부설로 복지시설을 운영하여 인력과 경제와 정보를 선순환 시켜 교화 교육 자선을 살려가는 것이다. 고창과 남원을 비롯한 교당에서 어린이집이나 노인복지시설 등 부설기관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봉공회를 활성화하여 사업을 펼치는 일이다. 원재료를 가공하여 완제품을 만들어 팔면 이익이 남는다. 비누, 오뎅, 유자차, 고추, 멸치, 유기농쌀 등 이 방법을 몇몇 교당에서 실시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교당 부채해결과 교당 건물증축을 위한 한시적인 목적아래 실시하고 있지만 이것을 상설화 하고 전문화하기 위해 교당에도 사업분과를 만들 당위성이 있다. 대산종사는 사대봉공회를 말하며 재가봉공회, 출가봉공회, 국가봉공회, 세계봉공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러한 사대봉공회를 지향해서 교당봉공회와 교구봉공회, 중앙봉공회라는 봉공회 체계를 세웠다. 교당봉공회에서는 지역사회 봉공활동을 위해서 사업에 눈을 뜰 필요가 있다. 중앙총부 자립을 위해서 원창사업부가 생겼듯이 교당 자립을 위해서 봉공회를 중심으로 사업분과를 양성해야 한다.

세번째는 교역자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주7일중 토요일 일요일은 교당 일에 힘쓰고 나머지 5일을 경제활동에 종사하여 품을 판다. 주로 미주지역 교무들이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국내에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초창기 선진들도 산업부에서 논밭 경작, 엿 제조, 양잠, 공장을 다니며 일을 했다. 이런 교단의 전통을 지금에 와서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이런 정신이 많이 쇠퇴하여 출가교역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또한 주위에서도 고운 눈길로 보지 않아 눈치를 준다는 것이다.

전무출신의 후생과 처우를 개선해 가야 한다. 원기100년까지는 교역자 개개인의 헌신과 희생으로 광역단위인 교단이 발전해 왔다면 원기200년에는 교역자 개개인의 헌신과 희생이 조직의 기초단위인 교당조직의 발전을 가져오고 다시 교당조직은 출가자 개인의 사회보장을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교단발전을 가져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자립은 아주 중요하다. 경제가 뒷받침하지 않는 교화 교육 자선은 공허한 메아리이고 사상누각이다. 이런 교육을 예비 교역자때부터 시켜서 철저한 실용적 학문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혼자힘으로 대중을 먹여살릴 수 있는 기능을 습득하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가다듬는 교육이 필요하다.

본인은 예비교역자들이 원불교 전무출신으로서 재가교도와 일반인을 교화함에 있어 4년 학부과정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석사과정은 본인의 전공에 따라서 타과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전문성과 실용성을 길렀으면 좋겠다.

남원교당에서 근무할 때 후배 교무들이 부임을 하면 다시 학교를 다니게 했다. 나만 하여도 필요에 의해 사회복지공부를 다시 하여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화혁신분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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