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서 미안해, 사랑해, 잊지 않을게"

▲ 영화 목숨의 홍보영상 중 첫 화면. 창공을 향해 가는 한 사람의 영혼이 오로라처럼 아른 거렸다.

한 암 환자가 삶의 안녕을 알리는 마지막 숨소리를 전한다. 후~하, 후~하. 7초마다 반복되는 거칠면서도 깊은 숨. 세밀한 음향을 통해 내 심장에 전달된다. 그리고 잠시 후 숨이 끝났다. 일순간, 삶을 마친 것이다. 현생이 없는 죽음, 다음 생으로 강을 건너간 것이다.

이창재 감독의 영화 '목숨'은 그렇게 시작됐다. 죽음을 보여주며 민들레 홀씨 같은 수많은 하얀 숨 털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아련하면서도 애잔한 슬픔이 밀려왔다.

최근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흥행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76년째 부부로 살고 있는 89세 강 할머니와 98세 조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노부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영화 '목숨'은 암 환자들이 입원한 호스피스 병원의 일상을 담았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임종을 목격하게 한다.

지난해 12월30일 영화 '목숨'을 관람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과 인연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가를 강조하지 않아도 알게 하는 영화다.

▲ 목숨 홍보 영상. 환자의 눈에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도 예사롭지 않다.

내 마지막, 누군가에게 의미 될 수 있다면

영화 '목숨'은 1년간의 제작 기록을 갖고 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이웃의 아픔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보도에 의하면 이창재 감독은 1년간 80여 명의 임종을 지켜봤다고 한다. 오랜 설득 끝에 촬영 허락을 한 환자가 다음날 임종을 맞는 등 예기치 못한 일들도 숱하게 벌어졌다고. 그는 라디오의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임종을 카메라로 촬영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기도 했다. 찍는 순간 슬픔을 참지 못하고 카메라가 흔들리기도 했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하며 이창재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길 바란다"는 의도를 굽히지 않고 섭외에 성공한 것이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직접 자원봉사를 하며 진정성을 전달하려 노력한 이창재 감독의 진심을 본 환자와 가족들은 촬영을 허락했다. 그는 "출연자들은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내 마지막이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며 촬영을 허락해 줬다"고 밝혔다.

▲ 목숨의 홍보 영상. 삶을 마치고 떠난 병실의 침대는 환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위로하는 듯 하다.

삶의 이야기가 다른 출연자들

영화에 출연해 위대한 선물을 주고 간 사람은 다섯 명이다. 내 집 장만을 위해 힘겹게 살아온 두 아들의 어머니 김정자 씨. 집안 살림 돌보느라 쉬지 않고 일하며 살아온 결과 내 집 장만은 했지만 뜻하지 않게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는 살아온 보람에 대해 "자녀 교육을 잘 시켜서 다들 잘 커 줬고, 집 평수를 늘려 이사를 했는데, 리모델링을 잘해서 이웃 주민들이 우리 집을 모델하우스처럼 구경오고 있다"는 자랑도 아끼지 않았다.

아파트에 입주를 마치고 가족들이 그녀를 집으로 안내했다. 집들이를 한 것이다. 환하게 웃는 그에게 가족들은 장미 꽃 한 송이씩을 선물하며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여보"를 진심을 다해 전했다. 기쁨의 눈물이 흐르지만 아픔은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오니 이렇게 좋네." 환히 웃으며 말하는 그. 남편은 "100년 가약을 맺었는데 아직 100년이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남기며 장미꽃을 아내 품에 안겼다. 아들 방과 안방, 집을 한번 둘러본 그는 "참 좋다. 이제 됐다"며 "고맙고 감사하다. 다들 큰 꿈을 안고 살아주길 바란다. 사랑한다"는 마음을 가족들에게 전했다. 집에 다녀 온 후 그는 며칠 되지 않아 숨을 몰아쉬고 열반을 했다. 영화 촬영하던 카메라가 흔들린 듯 영상도 흔들렸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이 싫다. 고통없이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이 고통이 참 싫다"고 말하지만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애써줘서 감사하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어 그는 "잠을 잘 때면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나를 두 손으로 끌어안아 주는 듯 날아갈 듯하다"는 감상을 남겼다. 집들이를 통해 애착과 탐착을 모두 잘 승화시킨 것이다.

친구 같은 아내와 중학생 두 자녀를 둔 사십대 박수명 씨. 그는 "옆방 환자들이 숨을 거둘 때마다 잠을 못 잔다. '아- 이제 자유롭겠구나'하는 생각 때문이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할까 말까 갈등하는 그에게 아내는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좋으니, 하루라도 우리 곁에 있어 달라"는 간절함을 전했다.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최대한 옆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왜 암에 걸렸나. 아주 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후 용기를 갖고 치료에 정성을 다 해 보는 그. 하지만 암세포들은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자꾸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안 가족들은 그와 마지막 가족사진을 촬영한다. 딸은 숙녀가 된 예쁜 모습으로, 아들은 성년이 되어 군 입대의 복장으로, 아내는 두 번째 웨딩드레스를, 박 씨는 턱시도를 입고 촬영했다.

그는 사진 촬영을 마쳤음에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딸 결혼식에 내가 손잡고 가야하는데 못할 것 같아 미리 사진을 찍었다. 또 딸에게 아빠의 찡그리는 모습을 남겨 주고 싶지 않았다. 웃고 있고, 미소 짓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훈훈한 가족애가 담긴 사진을 촬영한 후 2달, 그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

생과 사는 늘 우리 곁에 존재

영화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암환자들의 심리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자상함도 함께 한다.

박범신 작가는 〈힐링〉 에서 "시간차로 결혼식과 치매노인 병동을 다녀왔다. 결혼식에서는 새 인생에의 설렘을, 치매 병동에선 죽음 문턱에서의 공포를 본다. 비켜갈 수 없는, 그 둘 사이의 시간차는 불과 50년, 이는 먼 시간인가 가까운 시간인가" 자문하고 있다. 삶의 이면이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종경〉 천도품을 통해 '생과 사는 변화이다'는 이치를 알고 있다.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주는 일,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 진정한 사랑을 전하고 속 깊은 정을 나눠야 할 시간을 자주 마련할 일이다.

영화는 종반부, 후두암 수술 후 세 번의 자살 시도를 하고 쪽방 촌에서 살았던 무연고자 신창열 씨의 소식을 전해줬다. 자원봉사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희망을 안고 퇴원한 그였다. '신창열 씨는 후두암이 완치되어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시 살아갈 힘을 받은 관객들은 관람후기에서 '삶이 애틋해 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 일인지 알게 해 준다'는 감상을 남겼다. 촌음을 아껴 살아가야할 이유를 깨우쳐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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