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근래에 왕왕이 성리를 다루는 사람들이 말 없는 것으로만 해결을 지으려고 하는 수가 많으나 그것이 큰 병이라,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자리가 원래 두미(頭尾)가 없는 자리지마는 두미를 분명하게 갈라낼 줄도 알고, 언어도(言語道)가 끊어진 자리지마는 능히 언어로 형언할 줄도 아나니, 참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 하더라도 아는 것이 나오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렇게 하여도 모르는 것이 나오나니라. 그러나, 또한 말 있는 것만으로 능사(能事)를 삼을 것도 아니니 불조(佛祖)들의 천경 만론은 마치 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나니라." 25장은 성리공부인의 큰 병과 참으로 아는 사람에 대한 법문이다.

말없는 것으로 해결을 지으려 한다는 것은 불생불멸의 체자리만을 알 때 나타나기 쉬운 특징이다. 성리에 있어 묘유의 단계가 되기 전에는 공자리만 알기 때문에 말없는 진경을 표준삼아 오직 그 자리만을 사모하게 된다. 묘유의 단계란 공자리에 표준하되 영령한 지혜가 솟아오르므로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선악간 시비이해의 눈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묘유의 단계에서는 똑똑쟁이가 되어 두미를 갈라내고 언어로 형언할 줄도 알게 된다.

대종사께서 말없는 것으로만 해결 짓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그 공부가 공도리에 그쳐서 크지 못함을 염려한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큰 병이라 한 것은 그런 사람이 많다는 뜻이리라. 많은 공부인이 성리의 진경을 모르고 조금 알게 되면 무애행이라 하여 함부로 하다가 인과의 업력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강급하는 현실을 볼 때, 조금도 지나친 걱정이 아니며 공도리를 알았어도 얼마든지 자기분수를 모르고 처신할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세상은 하이클래스로 올라갈수록 피라미드구조처럼 작아지고 수행의 세계도 같다는 생각이다. 오죽하면 대각여래위도 천층만층이요. 삼세업력을 자기마음대로 누르고 자유자재하는 분은 손가락으로 꼽는다는 표현을 대종사께서 하셨을까.

그러므로 묘유를 알았어도 말 있는 것만으로 능사를 삼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불조들의 천경만론이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과 같다는 것은 용자리인 분별에 매이지 말고 뛰는 혼의 영지를 직시하라는 가르침이다. 불생불멸만 알고 인과를 모르게 될까봐, 인과도 아는데 아는 것에 그치고 심화기화가 못될까봐, 요리조리 주의를 주시는 스승님의 은혜가 한없이 크게 느껴진다.

성리의 두 축은 원래 두미가 없는 체자리와 두미가 있는 용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체는 걸림없는 마음이요, 용은 걸림이 있어야 되는 인과보응의 현실세계다. 이 두 세계에 자유로울려면 수행의 자타력 병진을 해야 한다. 타력을 얻는 지름길은 법회참석과 정기훈련이고 자력을 얻는 지름길은 상시응용6조의 꾸준한 생활화이다. 특히 성리를 쪼개서 손에 쥐어주다 못해 삼킬 힘도 없는 중생들을 위해 입안에 넣어주시는 자비, 그것이 상시응용6조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여섯 가지를 뭉쳐 주의심이라 하고 싶다.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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