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대각 후 세상을 일관하고 지금 세상에는 몇가지 큰 병이 들었으니 '남이나 자기의 오장육부를 태워 죽이는 병이 바로 원망병이라' 하고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했다. 감사생활을 하면 자기나 남 모두에게 은혜와 행복이 겹쳐 올 것이다.

'다큐 시크릿'을 보면 우주에 무한하고 충만한 기운이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에 따라서 내것이 되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에는 기운이 충만한데 우리가 감사심이나 행복감을 느끼면 좋은 기운이 와서 내 생활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반대로 불행함을 느끼면 안좋은 기운이 와서 운명이 나쁘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우주 천지는 온통 은혜라 사은이라 한다. 이는 가져다 쓰는 사람의 것이다. 감사하고 가져다 쓰면 풍요로울 것이다. 은혜가 한량없으므로 사은이고 그 은혜가 무량하므로 자신할만한 타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은혜를 두고도 가져다 쓸 줄 모르면서 미래를 이야기하고 부정적이 되는 것은 사은의 실지와 위력을 모르는 것일 따름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고 설사 그 사람이 어리석고 무능하고 불편하게 하더라도 나를 끝없이 좋아하면 그에게 나쁜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세상은 한없이 좋아하는 사람의 편에 서게 된다. 하물며 성실하고 지혜롭고 밝고 간절함과 여유로움과 공정함을 가지고 영원히 나에게 한결같은 정성을 쏟는다면 이런 인연을 누가 함부로 하고 쉬 여기겠는가?

대산종사께서는 우리의 복은 좋아하는데서 오게 된다고 했다. 눈 앞의 물컵 하나도 왠지 보기 싫다는 느낌을 가지면 볼 때마다 안좋은 느낌이 먼저 일고 당장에 기분이 나빠진다. 반대로 그것이 좋으면 물을 마실 적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 저 무정한 물건 하나도 나에게 행복과 불행을 일으켜 내는데 그 원인이 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게 있는 것이다. 먼저 감사하고 세상에 가득한 은혜를 받아보자.

현재 발령받은 교당이 좋으니 안 좋으니 하면서 행복과 불행의 권능을 교당에 주어서 그 은혜를 받지 못하고, 내가 만날 교도들을 좋은 사람 안좋은 사람으로 정해놓고 그 기운을 스스로가 받아서 행복과 불행을 갈라놓는다. 이렇게 사사건건 감정을 실어두면 하루 생활이 해가 지기도 전에 벌써 지치고 힘들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의욕과 기력이 떨어지니 이런 힘으로 무슨 교화를 하겠는가? 사람마다 부처, 사람마다 반가운 교도가 되면 종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원기를 얻고 정기(精氣)를 받으며 감사심으로 행복이 충만하고 은혜가 넘치게 되어 밝고 맑은 얼굴이 되어가니 이런 얼굴로 사람을 반가워하는데 어찌 교화가 안될 것이며 어찌 교단이 작다고 비관할 것인가?

땅에는 땅기운, 하늘에는 하늘기운, 산에는 산기운, 들에는 들기운, 나무도 꽃도 집들도 심지어 하수도 조차도 그 기운이 다 나를 위한 설시물들인데 어디인들 은혜가 솟아나지 않을 것인가 이러니 이런 사람은 천지만물에서 온갖 생령들 귀신들과 신장들에게서까지 은혜를 받게 되고 이런 마음이면 어찌 교단의 미래를 걱정하고 가정의 미래를 걱정할 것인가? 머리에만 법이 있고 말로만 은혜를 이야기하고서도 원불교 교도라 할 것인가? 천지에는 대은이 있고 만생은 불보살들이다 이 은혜를 입고 살아보자. 그리고 이 기운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전법사도이자 활불이다.

〈정산종사 법어〉에도 '감사 생활만 하는 이는 늘 사은의 도움을 받게 되고, 원망 생활만 하는 이는 늘 미물에게서도 해독을 받으리라'고 했다. 천어를 듣고 싶은가 부처를 만나고 싶은가 여기서부터 우리의 교화는 대 성공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정관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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