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올곧게 한길로 걸어오지 못해 부끄럽고, 신의를 지키지 못해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성실하지 못해 부끄럽다. 훌륭한 스승을 부친으로 모시고도 제대로 공부를 못해 부끄럽다. 걱정이다. 출가하고도 이름만 출가지 재가의 울을 벗어나지 못해 공중사를 그르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려서부터 공사에 전일한 양제승 원로교무의 모습은 내가 닮고 싶은 롤 모델이었다. 공직생활을 할 때 지공무사를 공부와 사업의 표준으로 삼고 살았다. 공부해야 할 나가 있고, 출세해야 할 나가 있다면 그건 참 나가 아님을 명심하며 무아봉공으로 일관하자고 다짐했다.

주저하지 않았다. 기간제 전무출신 모집 공고를 보고 전혀 망설임 없이 출가한 것은 양 원로교무의 말씀 한마디가 늘 귓전에 울렸기 때문이다. 모친 열반 후 부친은 "내 평생에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너에게 출가하지 말라한 것이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은 제가 결정한 일이지요. 아버님 말씀 때문에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고 말씀드렸다. 당시 형편이 너무 어려워 모친은 심신이 크게 지쳐 있었다.

정년퇴직 후 생각해 보니 재가로 있으면서 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마음도 편안히 해드리지 못했다.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사업을 잘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허송세월을 했나?' 생의 의미는 이타에 있다는 말씀 때문인가 하고 늘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다. 퇴직 후 아직 신체도 건강하고 일정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라는 자부심도 있다. 이런 시기에 봉사하지 않는 것은 개인, 가정, 국가 모두에 큰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산에서의 생활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서 산수화 속으로 걸어 나왔다가 밤이면 다시 산수화 속에서 꿈으로 들어가는 나날이었다. 소태산대종사는 깨달은 바를 일원상으로 드러내고, 몸으로 그 경지를 나투고, 우주의 대소유무의 이치를 간명하고 실천하기 쉬운 〈정전〉이라는 법으로 짜놓았다. 유무를 총섭하고, 영육을 쌍전하며, 이사병행하고, 동정일여의 원융한 만고의 대법을 받드는 행운을 만났다. 이것이 바로 맹구우목이 아니겠는가!

부족한 소견으로 한두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부족한 재력을 아쉬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교단 현존의 인적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자. 사회에 풍부한 재능의 적절한 안배가 교단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먼저 인재활용을 위한 전문부서를 마련해야 한다. 기간제 전무출신제도도 크게 교단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교구 단위로 재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구를 두어 교구·지구·교당별 재능의 적절한 안배를 통한 능력의 활용으로 교단의 힘을 키워가는 현실 속에서 가장 쉽게 도약하는 길이라 본다.

둘째 테스크 포스의 운용이다. 모든 새로운 기획을 즉시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기획팀을 마련하고 충분한 연구를 거쳐 시험 교당이나 부서를 지정하여 성과를 측정한 후 단계적으로 교단 전체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많은 구상을 실험해 보는 것이다.

셋째 단조직이 교화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단장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부나 사업 실력이 출중한 단장이 많은 교단이 되어야 한다. 타종교는 일대일 교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일대 백의 교화는 경쟁력이 없다. 일대 구의 교화제도가 실효성이 있도록 적극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

넷째 원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먼저 각 나라에 적합한 운영체제가 연구되어야 하고, 각 나라의 언어로 된 〈원불교교전〉이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 사회주의국가, 국교가 지정되어 있는 국가, 종교에 있어서 배타적인 국가 등 다양한 국가에서 교화를 위해서는 그 나라에 맞는 교화 방법이 시도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외국인의 자국인에 대한 포교를 심하게 규제하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포교를 할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국내로 데려다 교화함으로써 그 나라의 규제도 피하고 훌륭한 교역자로 교육하는 방법이 좋다고 본다. 또 열악한 경제 기반을 고려하여 기업체를 운영하여 교화기관의 자활력을 높이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델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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