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이면서도 70년이라는 긴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가 있다. 언어도, 외모도 많이 달라졌고, 정치와 사상은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

그곳은 너무 살기 어려워 어린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기회만 되면 자신의 나라를 떠나 멀리 유랑하거나 참으로 어렵게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을 한다. 탈북인, 아니 새터민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 탈북 학생들이 남한에 정착하여 공부하는 학교가 안성에 자리한 '한겨레중·고등학교'이다. 원불교 교단 내에 설립된 전인학원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탈북학생 전문교육기관이다.

처음엔 초등학생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이에 비해 많이 왜소해 보였다. 알고 보면 20세를 넘긴 학생들도 꽤 있었다. 그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까지의 교육과정을 밟고 사회의 일원으로 취업을 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을 한다.

5~6년 전쯤, 경기인천교구 여성회에서는 아픔을 가득 안고 낯설고 물 설은 땅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은혜의 결연사업을 하기로 했다. 여성회원들이 그들의 은부모가 되어 은혜를 나누고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 가지자는 뜻에서 시작했다.

학교 내 운동회, 장기자랑 등 각종 발표회, 소풍, 은부모 가정 홈스테이, 졸업식 등 가급적 그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갖고자 했다. 특히, 지난 12월에는 2박3일간 '초록디딤은혜학교'에 참여하여 4대 종교체험활동으로 서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도 3~4년 전쯤 처음으로 은부모가 되는 기회가 왔다. 처음에는 마음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하면서 오히려 순수함과 열정을 배웠고,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선생님들의 아이 사랑에 더 큰 축복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한 은혜의 결연사업은 날로 커져서 60~70명의 은부모를 탄생시켰다. 나에게도 세 명의 딸이 더 생겨 지금은 여섯 명의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재미있는 건, 함께 참여한 정남·정녀 교무들도 아들딸을 둔 은부모가 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마음 한 구석에 한 자락의 아픔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자신이 겪은 아픔들을 조심스레 꺼낼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린 나이에 참으로 힘든 인생을 살아왔구나 하고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앞으로도 마음속에 묻고 살아가야 할 그들만의 아픔이 우리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덜어지고 치유되어 새 희망의 미래를 살아갔으면 한다.

지난해 10월이었던가. 청운회 3000일 기도 회향을 백두산 일원에서 했는데, 행복하게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백두산 천지가 한 폭의 그림처럼 나의 눈 속으로,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왜 이토록 우리는 그리도 멀리 돌고 돌아서 중국 땅에서 천지에 올라와야만 하는지, 가슴 한 구석이 아팠다.

우리 민족의 땅을 걸어서 백두산에 오를 수는 없을까.

더욱이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를 방문하여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땅, 우리들의 민족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그 땅을 바라보면서 하루 빨리 남과 북이 통일이 되어 함께 살기를 간절히 기도를 했다.

정산종사께서는 삼동윤리를 강령으로 선포하시고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고 당부했다. 사생일신까지는 아직 공부가 미치지 못했지만,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인류 중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민족은 우리뿐이다.

천신만고 끝에 북쪽을 탈출하여 우리의 남쪽 땅에 자리를 잡게 된 새터민들. 이들이야말로 미래 통일의 인재로, 미래 북한교화의 일꾼으로 통일 한국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 일의 성공을 위해 경기인천교구 여성회의 은혜결연사업에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었으면 한다. 그동안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올린다.

<분당교당 여성회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