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인류 문화 자산·거대담론
신앙 차원 노인복지 생각할 때

마침내 원불교 100년, 벅찬 감격이다. 더욱이 100세 시대가 회자되고 있는 현실에서 원불교 100년의 의미는 왠지 원불교가 100세 시대를 이끌어갈 소명이 부여된 듯 싶어서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온다.

그렇다면 원불교 100년 이후 우리가 세상을 이끌어가기 위한 핵심 실천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자력자 보호, 즉 효의 실천이다. 효(孝. Filial Piety)는 누구라도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고 인간의 고귀한 생명과 인성을 아름답게 가꾸어내는 거대 담론이다.

일찍이 유가에서 효를 '모든 행동의 근본'이라 정의한 것도 효가 인성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효가 영원히 존재할 인류의 절대 가치라면 그것의 구체적 실천은 원불교의 교화, 교육, 자선복지의 영역에 있는 모든 무자력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특히 원불교 효의 본질은 기존 개념의 효를 넘어선, 이 세상의 모든 무자력자를 은혜와 보은으로 포용하는 절대효(絶對孝)이며 휴머니즘의 표상이다. 따라서 자선복지는 물론 교화, 교육 분야의 실천 가치도 무자력자 보호의 차원에서 보면 효로써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소태산은 효를 사은 중 부모은에서 밝히고 그것을 신앙성으로 승화하여 효가 단순한 예절 차원을 넘어선 종교의 본질임을 밝혔다. 더불어 부모보은 즉 효의 강령에서 "힘 미치는 대로 무자력한 사람에게 보호를 줄 것이니라"라고 밝히며 원불교 효사상의 실천 강령이 '무자력자 보호'에 있음을 천명했다.

또한 개교의 동기에서도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겠다"는 비전이 제시됐다. 이것은 물질의 속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무자력한 인류를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인류 구원의 메시지이며 효도 세상의 구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원불교 100년 이후, 100세 시대의 가장 큰 숙제는 '무자력자 보호'이다. 인성에 있어서,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 경제적으로, 건강상, 정신적인 면에서의 무자력자 등, 세상의 모든 무자력자의 범위 산정을 한다면 인류 모두가 무자력자의 범주에서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효의 부활만이 무자력한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구두선이 아니다.

효의 부활이 시대적 대세임은 국가 정책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에서도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장기요양법' 등을 제정하여 '사회적 효'를 전면에 내세우며 '효'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작년 12월29일에는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켜 인간성이 상실되어 삭막해져가고 있는 세상을 효와 예절 등을 우선으로 하는 실천 덕목을 통하여 건전한 인성 회복 방침을 법제화했다.

이러한 법들은 효의 부활을 더욱더 공고히 하고 있다. 인성에 무자력한 사람들을 효의 교육과 실천으로 아름다운 성품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원불교 효사상이 시대적 대세로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화·교육·자선복지 중 어느 곳에 소속되어 있든지간에 소태산의 효실천 강령인 무자력자 보호가 중심이 되어 교법이 구현되어야 함을 시대적 조류와 함께 읽어내야 한다. 이것이 종교 본연의 소명이기에 앞서 현실적으로 교운이 밀려오고 있는 형국임도 직시하자. 인성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가 효의 부활로 인성이 아름답게 꽃피는 세상을 학수고대하고 있지 않는가.

<원광효도마을 노인복지센터·효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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