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반야바라밀경〉 크기 20.8cm x 30.3cm
소태산대종사는 대각을 이루고서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했고, 특히 꿈속에서 본 〈금강경〉을 구해다가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금강경〉을 열람한 소태산대종사는 교법의 연원을 석가모니불로 정하고 불법을 토대로 완전무결한 회상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정리할 때 〈금강경〉을 직접 보고자 하여 여러 사연 끝에 소태산대종사가 직접 열람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금강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금강경〉은 불갑사 수도암에서 인쇄한 것으로 좌에서 우로 넘겨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첫 표지는 중앙에서 약간 우측에 갑자중추 상원이라는 글씨가 위에서 아래로 적혀 있으며 그 우측에는 책의 제목인 〈금강경〉과 계청(啓請)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고 그 다음 장을 넘겨 보면 '정사추 칠월 일(丁巳秋 七月 日)'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데 소태산대종사가 병진년 4월에 대각을 이루고 그 이듬해 정사년 7월에 〈금강경〉을 구해서 보았다고 볼 수 있으며 정사 추 7월이라는 필적이 소태산대종사의 필체와 비슷해 대종사의 친필로 추정해 볼 수가 있다.

본문을 살펴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로쓰기로 표기를 하고 있으며 한문을 쓴 후에 그 옆에 한글로 병행하여 표기를 하고 있다. 또한 책의 첫 구절에 불법연구회 직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소태산대종사가 친히 열람한 이후에도 계속 관리가 되었던 서적으로 볼 수 있겠다.

유물의 마지막 면을 살펴보면 광무(光武) 오년 신축삼월일 영광 불갑사 수도암 지판이라 적혀 있는데 광무라는 연호는 1897년에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호칭을 쓰면서 제정되었던 연호로 광무 5년은 1901년에 해당하며, 1901년에 영광의 불갑사에서 수도암을 새로 신축하면서 출판한 서적으로 볼 수 있겠다.

소태산대종사의 친필이 쓰여져 있는 교단의 중요한 유물인 동시에 그 당시 발행본으로도 귀한 유물로 평가 받고 있는 본 유물에 대해 좀더 확인하고자 당시 〈금강경〉을 출판하였던 불갑사 측에 문의한 결과 해당 기관에서도 소장하지 못하고 있어 본 유물을 소장한 원불교역사박물관에 대해 매우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본 유물은 원불교역사박물관에서 다른 전문기관과 협업해서 디지털작업으로 복제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표지와 안쪽의 내용이 오랜 기간 사용되면서 일부 손상이 되었으며, 본 유물을 확인하기 전까지 사적으로 소장되기도 하였는데 그 시기에 일부가 훼손된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교단의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손상되기 쉬우며, 손상이 더 진행되기 전에 복제하는 작업이 미래의 원불교 준비에 시급하다. 이 같은 당연한 사실이 인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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