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정신이 온전히 그곳에 있어"

기도는 생활 전부이자 마음의 중심
세계평화, 민족통일, 교단 발전 기원

국도를 달리는 길, 어둑해진 하늘에서 제법 굵은 눈발이 흩날렸다. 텅빈 들판에도, 겨울나무에도, 하얀 눈꽃송이 내려앉아 그대로가 한 폭의 설경이다. 좁은 시골길도 눈발이 내려앉으니 경계가 없어진다. 내 마음의 경계에도 하얀 눈이 덮여지길 바라며 소성교당에 닿았다.

현산 유덕훈(鉉山 柳德熏) 교도, 올해 나이 아흔이다. 혼자의 살림이 느껴지는 단촐한 그의 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작은 불단이 자리해 있다. 불단에는 향로와 촛대, 염주, 경종, 기원문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불단 위로 일원상이 모셔져 있다.

아흔의 나이에도 청년 같아 보이는 그. 하지만 세월은 그의 몸을 마음보다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보청기를 착용한 그에게 듣는 일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차분히 듣는 일로 취재를 대신했다.

"매일 새벽 5시에 기도하고 저녁 9시30분에 기도해요. 요즘은 몸이 안 좋아서 교당에 나가지를 못해요. 그래도 기도는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어요."

"어쩌다 기도 시간에 밖에 나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왜 그리 불안한지. 한쪽에 앉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요. 그래야 마음이 다시 편안해져요. 기도를 할 동안에는 정신이 온전히 거기에 있어요. 경종을 울릴 때에도, 입정을 할 때에도, 독경을 할 때에도, 마음이 그리 편안해요."

그는 '기도'를 할 때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전했다. '기도'와 '편안한 마음', 이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할 때마다 그의 표정도 어김없이 편안해졌다. 기도는 그렇게 그의 생활의 전부였고, 그의 마음의 중심이었다.

"기도는 헛된 것이 절대 아니야. 나는 우리 선조가 닦은 기도 은혜로 덕을 본 사람이에요. 한국전쟁 당시, 그 전쟁터에서도 내 마음에 조금도 두려운 바가 없었어요. 왜 그런가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우리 부친의 기도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6백 명 중에 6명밖에 살아나오지 못했던 전쟁터'였다고 그는 전했다. 자신이 살아서 걸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늘 자식을 위해 기도했던 부친의 기도 위력 때문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기도란 것이 그렇게 위력이 좋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요. 딴 사람들도 이걸 알았으면 좋겠어." 기도 위력을 깨닫기 바라는 그의 마음이 듣는 이의 마음까지 깊숙이 와 닿았다.

"대종사님 법이 얼마나 어떻게 좋은지, 나는 말로 표현을 못해요. 그저 대인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좋은 일이 있을 테지 하고 따라하고 싶은 맘뿐이에요."

"예를 들어, 남한테 서운한 맘이 들거나, 누구하고 언쟁이라도 생기면, 내가 교당에 다니는 사람인데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저지하는 마음이 들어요."

"어쩌다가 내 몸이 불편하면, 그때도 생각이 들지요. 사람이 살면 나와 같이 고뇌가 다 있을 것인데, 내가 이걸 극복해야 교당에 다니는 본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너무도 쉽고 꾸밈없는 그의 표현, 하지만 그는 세상 모든 일의 본위를 '교당 다니는 사람'으로 삼고 있다. 단촐한 그의 말은 그래서 더 신앙의 힘이 실려 있다.

기도 일념을 전하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네요. 아내가 암으로 투병하다가 원병원에서 열반했어요. 하루저녁, 아내 손을 가만히 잡고 눈을 감고 있으니, 아내의 수술자리가 보여요. 새까맣게 타서 나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세상사 궂은일은 다 내게 맡기고 걱정 말고 편안히 눈감으라고요." 그는 그렇게 그의 기억 한 편에 자리해 있는 아내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말을 듣는 일, 여느 때와 다른 인터뷰지만 분명 큰 울림이 있었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남 신세 안 끼치고 잘 죽는 일만 남았어요.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이지" 그의 기도 내용이 궁금해졌다.

"오늘도 특별한 마장 없이 사은님의 은혜 속에 감사생활과 자력생활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을 뒤돌아보면 못 다한 아쉬운 일도 있사오나 오히려 주어진 분수에 편안하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나이다."

"생로병사의 이치 속에 늙고 노쇠하여 변화해 가는 것이 진리이오니 영생길이 있음을 알고, 이 공부 이 사업의 재미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미워할 것도, 화낼 것도, 애착할 것도 없는 인생무상의 이치를 깨달아 복 짓는 재미와 집착을 놓은 공부로 다음 생을 준비하겠나이다."

"세계의 평화와 이 민족의 화합 통일과 국가의 안정과 교단적으로 원기100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공부인들이 불보살의 대열에 서서, 정진 적공하는 교단으로, 만 생령이 함께 이 법의 불은을 입게 하옵소서."

그가 들려준 기도 내용이다. 조석으로 기도하는 그의 서원이자 염원이다. 기도문을 전하는 그의 눈빛이 간절하고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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