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동안 단 1분 1초라도 분별성과 주착심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이 부처요 성인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걱정하지 말자. 대종사께서는 우리 모두 부처 되고 성인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알려 주셨다.

삼학 수행 중 정신수양이 그 하나이다. 수양(修養)은 닦을 수에 기를 양.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 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말한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다 마음작용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 근본을 자세히 바라보면 욕심이다.

욕심의 뜻은 하고자 하는 마음인데, 우리는 욕심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일어난다. '욕심 부리지마라, 그것은 욕심이야~' 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것이 과하게 되면 원칙을 무시하고 편법을 쓰게 되며 문제가 생긴다. 순간의 욕심에 주착되어 버리는 것이다. 욕심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욕심을 더 큰 욕심으로 키워야 한다. 나 혼자만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타인과 사회 국가 세계를 위한 이타적 욕심으로 키워야 한다. 대종사께서도 작은 욕심을 큰 서원으로 키워서 수행하라고 하셨다. (〈대종경〉 수행품36장)

수양은 온전한 정신을 얻어 마음의 자주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로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신수양을 하여야 할까? 〈정전〉에는 정기훈련 11과목 중 염불과 좌선을 정신수양 훈련과목으로 정해 놓았다. 염불은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는 것이다. 좌선은 호흡을 통해서 고요한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수행방법이다. 염불과 좌선 모두 오랜 시간하게 되면 어지러운 정신이 맑아지고 수승화강이 되어 신체적 병고도 줄어든다.

수양은 시간이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경계에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순간에 하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수양공부 잘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경계를 미리 피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처음 하는 일이 아니면 대체로 반복되는 것이 많다. 일어날 일을 미리 연마하여 경계가 생기기 전 미리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무심으로 대하는 연습을 한다. 분별, 시비, 삼독오욕심이 올라와도 알아차리고 원래 마음으로 돌아간다. 셋째 자연과 가깝게 지낸다. 평소 등산, 여행 등으로 자연을 느껴보는 것이다. 넷째 언제나 일심으로 하기. 사심잡념에 흐르지 않고 그일 그일에 일심한다. 곧 무시선 무처선의 심법을 갖는다.

이상의 방법들로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수양법을 찾아보자.

<김제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