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손톱으로 바위에 구멍을 내는 심경은 참으로 비참했다. '내가 뭐 하러 이 일을 하는가?'라는 회한이 들었다. 그럼에도 또 했다. 자꾸 하다 보니 바위에 붙어 있는 조개들을 손톱으로 떼어내는 듯한 심경으로 바뀌었다. 쉼 없이 정성을 드리니 힘이 생길 뿐 아니라, 기운이 돌아가는 느낌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됐다.

그때쯤 교단 내에서는 교헌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려는 논의가 시작됐고, 재가를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크게 대두됐다. 지자를 본위하여 배워 나가야 한다는 말이 곳곳에서 회자되자 허공과 씨름하듯 막막하던 느낌이 점점 흙을 파내는 듯한 자신감으로 변했다. 교단의 기운이 바뀌는 것을 보고 있으니, 대종사께서 조단법으로 널리 교화하고자 했던 그 경륜이 아주 먼 일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일만 같았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참 아득하다. 원무를 하게 된 까닭이 조단법을 살려내는 데 있다 했으니, 나는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누가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면 할수록 도리어 비난과 수모를 겪는 일이 많은데도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 일에 온갖 정성을 드리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대종사를 만난 은혜가 크고 넓기 때문일 것이다. 〈대종경 선외록〉에 대종사께서 "내 법을 그저 좋다고만 하는 사람은 아직 다 모르는 사람이다.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저 좋아서 미쳐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에 절감한다. 지난 나를 떠올려보면 둔하고 어리석었을 뿐 아니라 모든 계문을 어기며 살았다. 그러기에 실로 무명의 지옥중생계에 살았다. 당시를 표현하자면 가시밭에서 눈을 감고 가는 형국이요, 그물에 걸린 고기의 심경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날카로운 가시밭을 눈감고 가니 움직일 때마다 찔려서 피가 났고, 그물에 걸린 고기 신세라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 도리어 살이 찢기고 뼈가 상해 아프기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젊은 날을 떠올리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를 돌이키고 싶지 않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도 달라졌다. 대종사의 법을 만난 은혜가 워낙 커서 그런 힘든 시절을 겪어야 한다면 충분히 감내해야 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과정이 대종사를 알아보는 관문이라면, 다음 세상에도 다시 그런 고초를 겪어야 한다 해도 나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모든 일상이 오직 은혜가 되는 기쁨으로 산다.

<원남교당 (주)이주넷대표>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