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시대 새 종교 원불교는 성과 속이 둘이 아니고 생활과 종교가 둘이 아닌 주세 종교로서 정남·정녀가 성직의 전제 조건이 아님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근거는 〈대종경〉 서품 18장에 명시된 '출가라 하더라도 결혼의 금지를 두지 않으며, 결혼은 각자의 원에 맡기며'라는 선언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원불교 교단 내에서는 남자 교무에게만 결혼이 허용되는 성 차별적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시대에 맞지 앉는 성 차별적 제도의 이유를 설명하기에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여자 교무의 결혼 허용에 대한 논의의 초점은 여성 전무출신으로서 결혼 생활의 가능·불가능, 쉬움·어려움 또는 교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등의 문제를 논의하자는 데에 있지 않다.

오직 세계종교로서의 교리적 이념과 현실적 제도의 일치성, 남녀 간 평등성 유지라는 인류 보편적 합리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과거 소태산대종사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결혼 후 전무출신을 한 선진들이 많이 있었으나 현재의 전무출신 지원규정에 의하면 여자의 경우 미혼인 채 정녀지원서를 제출하지 않고서는 전무출신 지원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교무를 하는 도중에 결혼을 할 의사가 생기면 교무 직을 떠나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유독 여자에게만 결혼 자유의 의지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에 소태산 교조의 교법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전무출신의 길을 지원하는 절차상 과정에서 정녀지원서 제출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이 논의에서 주장하는 바이다.

실제로 어려운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해내느냐 하는 것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업의 문제이고 나중에 교단이 여유가 되면 전무출신의 복리후생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 피선거권 자격에 학력 제한의 철폐를 주장한다고 해서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원에 따라 출마하고 지지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각자 알아서 자기 힘으로 해야 한다. 헌법에서 대통령 되도록 도와줄 수도 없지만 당선되기 어렵다는 점을 열거해서 피선거권을 박탈하지도 않는다. 냉정한 합리성 그것이 법의 정신이다.

왜 유독 여자 교무가 결혼 했을 때의 어려움을 낱낱이 상상하여 강제로 결혼의 의사를 막아야 하는가. 여자 교무의 결혼 허용에 대한 주장의 논지는 바로 교법의 정신이다. 현실적으로는 정녀 지원제도가 폐지되어도 대다수의 여자 교무들이 험난한 결혼의 피폐한 생활보다는 고귀한 정녀의 삶을 택할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 그러나 이 논의의 본질은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도를 이룬 다는 것은 산속에서 고귀한 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의 실천 여부이기 때문에 남자 교무가 처자를 떠나지 않고서도 도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자 교무는 여자 몸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그렇게 오만한 편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가.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다른 점은 여자는 아이를 낳는다는 점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 때문에 정말 도를 못 이룰까. 그런 짐작을 할 권리가 있기는 한가.

대종사께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정산종사, 대산종사, 조전권 종사 등의 스승들께서도 결혼한 전무출신이 나와야 한다고 이미 다 말씀하셨는데 어찌 교조 열반 후 겨우 70여년 지난 시점에 처음부터 처녀만 뽑아서 교무 자격을 주고 아예 결혼할 생각이 있으면 퇴출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는가? 우리가 옳다고 하는 법의 정신, 즉 그것은 선천 사고를 뿌리치는 후천 개벽의 사고, 사람으로서 평범한 일생의 틀을 걸으면서도 성불을 이룰 수 있다는 그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

끝으로 평생 정녀의 삶을 서원한 교무들의 숭고한 뜻이 지금의 결혼 허용 주장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종사의 말씀을 덧붙인다.

"나의 법은 과거 불교와 달라서 결혼 생활을 법으로 금하지는 아니하나 특별한 서원아래 순결한 몸과 마음으로 공부 사업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어찌 범연할 수야 있겠는가" 〈대종경〉 실시품27장.

<교화혁신분과 특별위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