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아니었다면 삶의 의미 제대로 알았을까"

화성전기온돌 25년째, 제주 이방인이 터줏대감으로
모든 일에 감사와 긍정의 삶

해심(害心), 원망심, 사심이 없는 보살. 욕심도 없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소박한 사업장으로 만족하며 인생의 행복을 가꿔온 교도가 있다. 신제주교당 봉공회장 최명수(61· 明陀圓 崔明修)교도다.

신제주교당 황법심 교무는 "20년 가까이 봐 왔다. 한마디로 여여(如如)하다. 깨침에서 오는 진심의 소리를 하고 보살행의 표본을 보여주는 교도이다"고 망설임 없이 칭찬했다.

그는 깊은 회한을 들이키며 신앙생활의 첫 실마리를 풀어갔다. "교당이 아니었으면 인생의 의미 제대로 알고 살았을까 싶네요."

그는 1974년,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과 동시에 장성교당에서 입교했다. 장성이 고향인 그가 제주에 안착하게 된 것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문이었다.

"서예가인 남편(이도천 교도)이 신제주새마을금고 상무를 잘 알고 있었죠. 당시 이사장이 여관을 하고 있었는데 딸에게 붓글씨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해 왔어요. 시대 상황도 심상치 않아 새마을금고 직원들이 여관방 하나를 빌려줘서 직원들 한문 서예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제주에 인연의 발길이 왕래했다.

"여관생활이 퍽 어려웠죠. 정착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가려했습니다. 하지만 붓글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시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 농어촌개량을 위한 집을 지어 놓았다고 한 직원이 알선을 해 줬어요. 그곳에 살면서 서실(書室)을 신제주에 차리게 됐죠."

고향으로 가려는 마음은 내려놓아야 했던 것이다.

"남편이 서실을 운영한다지만 여전히 생활은 어려웠어요. 마치 서실이 신제주교당과 인근이었습니다. 당시 김지선 교무님이셨죠. 제주교당은 버스 한번 타면 갈 수 있었는데. 신제주교당은 버스 2번을 타야했어요. 불편하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교당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죠. 눈이오나 비가와도 꾸준히 다녔어요. 법회 다니면서 마음공부가 되어 진 것 같아요. 오로지 글씨만 쓰는 남편은 가정생활은 안중에 없었죠. 경계도 많았지만 가장역할을 내가 다 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은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감사생활을 일관한 것이다. 감사생활 덕분인지 큰 돈 벌지 못해도 생활은 되었던 것도 법신불사은님의 힘이었다.

"하루는 새로 온 교무님이 '법회 출석만 꾸준히 해도 큰 힘이 쌓인다'는 말을 했어요. 그 이후 법회 출석으로라도 힘을 쌓자는 다짐을 했죠." 지금도 법회 30분 전, 교당에 도착해 오는 교도를 맞이하는 주인이다.

그는 교당에서는 봉공회장, 가정에서는 가장역할을 거뜬히 해 내고 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화성전기온돌 사업은 25년이 됐다. "사업 초기에는 남자가 할 일을 여자가 한다고 말들 했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았죠. 내가 할 일이 있어 고맙고 감사했고, 일 마무리하고 나면 사람들이 인정해 줬어요. 그래서 보람과 행복이 함께했다. 제주시에서 전기 판넬 분야에서는 '화성전기'라고 하면 모두 알 정도로 제주 전역의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지금은 둘째 아들이 사업을 돕고 있다.

그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베푸는 일도 망설이지 않는다.

"작업을 하러 가보면 춥게 생활하는 어려운 사람이 많았어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도왔죠. 어르신들은 전기 온돌방을 어렵게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쉽고 간편해요. 전기세도 걱정할 만큼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큰 것을 주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주는 기쁨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장에 출근해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매일 교전 읽기, 참회문, 반야심경 등을 세 번은 기본, 읽고 또 읽는다.

"집과 가게에서 하는 기도 외에도 차를 타고 제주 전역을 다닐 때도 늘 독경을 해요. 습관이 되니 이제는 큰 어른을 모시고 다니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늘 든든하고 사은님이 도와주고 있다는 기운을 느끼죠."

황 교무는 "봉공회장은 사대불이신심을 이견없이 받치는 교도다"며 "감사와 긍정으로 모든 일을 풀어가고 봉공회 활동을 10여년 넘게 해 오지만 원망하는 말을 한 적을 못 봤다. 특별한 신심을 가진 사람이다"고 밝혔다.

또한 "모든 취사와 선택, 행동의 표준은 교법으로 하고 있다. 하루 100원씩 놓고 기도를 한 후 기도금을 법당에 가져와 불전에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처 사람들 역시도 한결같이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진실하냐, 참 특별한 사람"이라고들 입을 모은다고. 화내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그의 남편 도천 교도는 병풍용 '일원상서원문과 반야심경'을 여러벌 정성스럽게 써서 황 교무에게 공양했다. 제주시니어클럽 사업에 활용해 달라는 부부의 염원이다.

신앙생활은 물론 가정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그가 말했다. "일 당하면 삼가 바보인 듯 행하라는 말씀처럼 어느 때는 내가 바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참 바보로 앞으로도 열심히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일직심(一直心)의 힘이 전해왔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