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선원에서 송도성에게 "과거 칠불(七佛)의 전법게송을 해석하라" 하시니, 도성이 칠불의 게송을 차례로 해석하여 제칠 석가모니불에 이르러 "법은 본래 무법(無法)에 법하였고 무법이란 법도 또한 법이로다. 이제 무법을 부촉할 때에 법을 법하려 하니 일찌기 무엇을 법할꼬" 하거늘, 대종사 "그 새김을 그치라"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본래에 한 법이라고 이름지을 것도 없지마는 하열한 근기를 위하사 한 법을 일렀으나, 그 한 법도 참 법은 아니니 이 게송의 참 뜻만 깨치면 천만 경전을 다 볼 것이 없으리라"

칠불게송 해석을 보니 대종사 생전에도 제자들과 이런 공부의 가풍이 있었다는 것이 새롭고 감개가 무량하다. 대산종사 생전에도 완도 등지에서 꼭 삽삼조사게송 해석을 통해 직지인심의 성리를 공부하도록 하신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여년이 지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에게도 그 자리에서 성리해석을 시켜주셔서 출가의 기연을 만들어 주신 은혜를 입었다. 참 법은 한 법이라고 이름 지을 것도 없는데 하열한 근기를 위하사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주셨고 〈정전〉과 〈교전〉의 수많은 법문을 내려주셨다. 중생이란 본래 부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건만 스스로의 탐진치에 가려 무자력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게송의 참 뜻만 깨치면 천만경전을 볼 것이 없다는 말씀, 이는 마치 아이에게 어머니 젖이 필요 없다는 말씀과 같다. 그러므로 참 뜻을 깨쳐 젖은 떼도 사랑이 필요하듯 법유를 잘 먹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자력 갖춘 교도는 수가 적다. 금년도 교당 공부 방침으로 상시일기 기재를 하여 월말에 제출토록 하였는데 적은 수가 제출을 하였다. 시작한 분이 적다는 사실은 현재 교단의 공부수준이 타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 법이라고 이름 지을 것도 없는 자력을 얻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매여 보는 상시훈련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절제하고 단련하는 노력 없이 어찌 심월이 솟을 수 있겠는가.

대종사께서 회상을 펴시고도 '너무 빨리 편 것은 아닌가' 하셨다는 말이 일설로 전해오는데 현 교당들의 공부수준을 볼 때 지나친 말씀이 아니라는 감상이 든다. 연초에 교구인사시 재가법사께서 자신의 나쁜 습관을 떼는데 상시일기 기재만큼 좋은 것이 없더라는 공부담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이제 법은 완벽하게 나왔다. 대종사 이하 역대 종법사께서 도깨비 방망이 같은 혜복의 지름길을 밝혀 주셨다. 이제는 각자가 가져다가 실천해야 효과가 나는 법신불시대, 성리시대가 되었다. 실천하지 않으면 중생의 탈을 벗기 어렵고 걸음걸음이 고해를 벗어나기 어렵다. 실천하는 사람은 공효가 나타나 세상에 드러나고 가는 곳마다 대우를 받을 것이며 동포님들의 환영과 신뢰 속에 법열에 찬 거듭난 인생이 전개되리라 생각한다.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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