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안목의 통일운동 필요하다"

▲ 이승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는 권력지향적인 통일 논의보다는 국민적 합의를 통한 통일운동에 전력해왔다. 출범할 때부터 정부, 여야를 물론하고 보수와 진보, 중도단체가 함께 참여해 건설적인 통일논의와 대북지원 사업을 펼쳐와 든든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민화협의 탄생에서부터 실무적으로 깊이 관여해 온 이승환(58·법명 성제) 통일맞이 집행위원장은 원불교가 북한에 의료기술 전수나 농업과 에너지를 결합한 마을단위 개발로 독자적인 통일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했다. 서울회관 문화사회부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그는 언론에 많이 알려져 있는 탓인지 친근하게 다가왔다.

- 민화협은 어떤 단체인가

민화협은 정부,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 협의회 등이 참여한 보수와 진보, 중도를 망라해 남북통일 문제를 다루는 단체다. 통일 문제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민족의 화해협력과 평화실현을 통해 민족공동 번영을 도모하고 있다. 1998년에 발족한 민화협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원 속에 남북관계에서 정파를 초월한 합의체가 필요해 만들어졌다. 남남갈등을 최소화하고 권력지향적인 통일 논의보다는 국민적 합의의 통일 논의, 남북한 민간교류 활성화,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민화협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민화협이 만들어지기 전에 처음으로 이런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안을 했다. 2000년에는 사무처장을 맡았고, 이후에도 정책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을 줄곧 도맡았다. 실무적으로 민화협을 총괄하는 역할을 해왔다. 업무를 총괄하다 보니 북쪽 관계자들과 협력해서 일을 많이 했다.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시간도 부쩍 많아졌고, 2001년에는 금강산에서 첫 민간 남북공동행사를 진행했다. 2002년에는 북측 대표들이 서울에 내려와 남북공동행사를 하는 등 매년 6.15 공동선언 합동행사와 광복절 공동행사에 실무를 맡아왔다. 내부적으로는 남한의 여야 대표들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이 참여한 겨레손잡기 운동이 판문점에서 서울 독립문까지 인간띠 잇기를 했다. 북한 내 국보급 고구려 유물을 대여해 강남 코엑스에서 3개월간 전시해 호평을 받았다. 또한 북한에 나무심기 운동 전개, 영유아 취약계층 대상 밀가루보내기 운동 등을 펼쳤다.

- 현재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민간교류가 활성화돼야 한다.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사건에 이어 5.24 조치(천안함 사건)가 취해지면서 대북 지원활동이 가로막혔다. 올해가 광복70주년이다. 이제 정부도 민간교류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부분적인 민간교류를 대폭적으로 확대해 대북 인도지원을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민화협도 정부와 협력해 민간교류가 활성화되도록 지원하겠다.

- 남한 내 통일단체는 얼마나 되나

현재 민화협에 가입된 단체는 170여 개다. 또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에 8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NGO의 성격은 다르지만 많은 단체들이 대북사업이나 통일 분야에 부서를 두고 있어 실제로는 더 많다. 6.15 공동선언 남측위원회에 소속된 단체도 500개가 넘는다. 이들은 각 지역별 위원회를 두고 그 지역에서 통일 운동을 펼치고 있다. 남북 평화문제에 관계 있는 시민평화포럼도 구성돼 활동 중이다.

- 동북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굉장히 우려스런 상황이다. 연초에 남북 정상이 교류협력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이렇다 할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이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원인은 남북한이 신뢰의 프로세스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북전단 무단 배포, 이산가족상봉 합의, 한미군사훈련 연기, 상호 비난 금지 등을 주장했지만 남한은 성실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또 유엔의 북한인권법 통과나 전시작전권 이양 연기, 대규모 한미군사훈련, 종북 드라이브 정책 등 북한과 개선의 방향보다는 적대적인 쪽으로 갔다. 그러다 보니 정상들도 신뢰에 바탕한 호응이 아니라 면피성 언술들로 대응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남북한의 상황이다.

이때 우리 정부는 좀 더 신뢰 있는 대화와 책임감이 필요하다. 기초적인 신호를 북쪽에 줘야 한다. 예를 들면 대북전단 살포의 경우 미온적인 대응보다는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주민들의 안위를 위해서도 통제돼야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언론에 노출시키기 보다는 규모를 줄여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조금씩 신뢰의 메시지를 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 남북관계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소니 해킹 문제로 북미관계가 악화됐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추가 경제제재 조치를 언급하며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낼 정도로 험악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북미관계에 따라 남북관계가 종속되는 형태였다. 강대국의 입김이 한반도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북한도 통미봉남 정책을 써 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남북한의 영향력이 커졌다. 미국이 제동을 걸더라도 남한이 설득하면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문제는 큰 틀에서 한반도화 됐다고 말하고 싶다. 북한도 미국이나 중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당국자들의 적극적인 대화가 요청된다.

- 남북문제에서 종교계의 역할은

종교계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북한의 변화는 남측의 종교계와 대화하는 인물로 비중 있는 사람을 배치했다. 북측 종교계가 힘을 가지게 되면서 남북교류의 역할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남북교류에서 결국 민간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북측도 인정한 셈이다. 주의할 점은 교화나 선교를 중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원불교도 개성교당 복원 등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교화적인 작업은 천천히 해도 된다. 대신 북측의 신뢰와 마음을 얻는 사업을 찾아내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빵공장이나 국수공장 지원활동은 긴급구호적인 측면이 강하다. 북한 사람들은 이런 접근을 큰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불교의 장점인 한약재나 한방, 의료 교류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북한의 의료시설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의과대학과 교류협력이나 기술 전수 등 가치 있는 곳에 투자를 해야 한다. 또한 농업과 에너지를 결합한 마을단위, 지역단위 접근도 요청된다. 한 지역에 에너지 문제와 농업, 태양광 발전 모듈 지원, 집단농장에 농업기술과 자재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개발을 제시하고 싶다. 한 지역단위와 끈끈한 관계를 맺는 집중 투자 방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밖에서 본 원불교는 어떤 모습인가

사회활동을 통해 여러 교무들을 만났다. 정갈하고 인격적으로 뛰어난 분들이었다. 아마 마음공부로 단련된 모습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 교류했던 정인성 문화사회부장의 연원으로 최근에 입교했다. 민족종교라 이질적이지 않았고, 소태산대종사의 가르침도 마음에 와 닿았다. 밖에서 보는 원불교는 일단 계파 갈등이 없는 종교로, 분파하지 않고 일관되게 성장해 왔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단일화된 응집력에서 원불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원불교를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못봤다. 창립이 오래되지 않아 교세는 약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기100년 맞아 점점 원불교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사회적인 영향력이 더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소태산대종사의 가르침이 한국사회에 더 퍼졌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가 정신이나 물질(자본 등)에서 원불교적으로 개벽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천적인 개벽운동이 필요하다.


이승환 민화협 집행위원장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0년대 말부터 남북관계와 통일평화운동에 몸담아 왔고, 이론과 현장을 모두 이해하는 남북관계 전문가이다.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그 외에도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겸 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는 시민정치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나라'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