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김살이라곤 하나 없는 환한 표정과 말솜씨

▲ 양지안 교도가 점자정보단말기에 저장된 대종경 각 품을 찾는 시연을 했다.

"9살에 내가 선천성 백내장이라는 것 알았다.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는데 어머니들이 오셨다. 친구들은 엄마가 온다고 뛰어가는데 나는 엄마 얼굴은 안 보이고 치마 색과 옷 입은 형상을 보고 걸어갔다. 구슬치기 할 때도 나는 땅 색이 분리돼 보였다. 그 사실을 14살에 눈 수술을 하고 나서 알게 됐다. 수술 전과 후의 차이가 확연했기 때문이다. 내 눈은 선천성 백내장이었다."

60년 인생 시각장애로 살아 온 부산 금정교당 양지안(63) 교도의 체험이다. 장애를 가졌지만 활발한 성격을 지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00만 시각장애인이 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은 '나쁜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사람'이다.

그는 "제 눈은 집안에서는 자기 앞가림을 할 정도, 밖에 나가면 안 보이는 정도다"고 설명하며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망원경을 쓰고 초점을 맞춰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과 다르듯 내 눈은 카메라 렌즈가 아주 약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선천성시각장애를 갖고서도 자력으로 행복한 삶을 가꿔온 그를 2월27일 그의 집에서 만났다. 정갈하게 정돈된 집 내부, 그늘이 없는 그의 청량한 목소리만큼이나 말끔했다.

생명의 전화, 상담 자원봉사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나는 시각장애인은 흰지팡이를 들고 안내견을 따라 걷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혹시 안 보일 때를 대비해 지팡이 교육을 다 받는다. 안내견은 전혀 안 보이는 사람에게 대기업에서 지원을 해 준다. 그러나 강아지 관리도 쉽지 않다. 집에서 목욕도 시켜야 하는 등 여력이 있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전혀 안 보이는 정도는 아니다. 사물을 눈 가까이 가져가면 볼 수 있는 정도다. 그래서일까. 가족들은 그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다. 33세에 결혼한 그는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에게 '내 눈은 불편할 뿐이다'"며 "생활 속에서 많은 부분을 자력으로 하려고 한다. 인연들은 삶의 지혜를 나한테 구하기도 한다"고 유쾌하게 말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양 교도는 다년간 '생명의 전화' 자원봉사자로 상담을 해 왔다. 그는 "취미로 상담을 해 온 것이 1천600시간이 됐다. 20년 정도 해왔다"고 다양한 체험적 삶을 소개했다. 사은에 보은하는 차원에서 상담을 시작하게 된 그는 "요즘 사회가 인심이 각박해졌다. 속 털어 놓을 곳이 없다. 살면서 내 심리를 알기 위함도 있었지만, 상대방의 심리 상태에 도움도 주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꽤 오랫동안 상담을 해 온 셈이다"며 "전화를 받다보니 망상장애 등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많았다. 주로 인지적 상담을 해 왔다"고 밝혔다. 교법을 알았기에 전화상담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며 보은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원불교와 인연

"중학교 3학년때다. 서울맹아학교에 박청수 교무님과 숙명여대생들이 찾아왔다. 4월 대각개교절쯤 인 것 같다. 우리 학교에 와서 책을 읽어 줬다. 박청수 교무님이 그날 강연도 했었다. 우연찮게 어머니가 나를 보러 부산에서 오셨다"며 강연을 들은 어머니가 "불교는 한자가 많아 힘들다. 원불교는 한글 경전이니 너희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 현대불교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권장했다. 그 말씀을 계기로 그는 사람을 모으기 시작해서 학교에 원불교 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물론 당시 사직교무에 근무 중이던 박청수 교무의 정성도 많았다.

그는 "사직교당에서 후원해줘 점자로 된 〈정전〉과 〈대종경〉, 성가 합본을 책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알루미늄으로 점자를 찍어서 롤러 형식으로 인쇄를 해 여러 장 찍어낼 수 있었다. 학생들이 돈을 조금씩 내서 만들었다"고 오래된 기억을 꺼냈다.

그는 원기58년 대산종사를 배알했을 때의 기억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총부로 1박2일 훈련을 갔다. 당시 오안(五眼) 법문을 해 주셨는데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산종사는 당시 훈련 온 맹아 7인에게 "예로부터 큰 도인들이 신체적인 불구가 됨을 기연하여 그 조건을 극복 큰 힘을 얻은 분이 많으시다. 오늘 지안(智眼)이와 같이 온 이 7인이 부처님의 오안(五眼)을 갖추게 하는 염원으로 오늘 부처님의 오안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며 불안(佛眼), 심안(心眼), 법안(法眼), 도안(道眼), 천안(天眼)에 대해 법문했다. (〈대산종사 수필법문집 1〉 726쪽)

많은 것은 자력으로

요즘 그의 하루 일과는 몸이 아픈 손님들과 만나는 일이다. 학교에서 배운 과목 중 안마나 지압, 마사지 등으로 손님에게 필요한 유용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손님 예약이 겹치지 않게 메모하는 것부터 각종 일정을 혼자 관리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점자정보단말기' 하나면 된다고. 그는 "각종 한글 파일 등을 이 단말기에 넣으면 점자로 보여준다. 기계가 좀 비싸기는 하다"고 소개했다.

교당 일요법회에서도 특별한 도움을 받지 않아도 식순에 따라 모든 것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다만, 법어봉독을 할 때는 정확히 몇 장까지 안내해야 점자정보단말기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 집에서 공부할 때도 이 단말기 도움을 받는다. 점자정보단말기에서 〈대종경〉 각 품 찾기를 보여 준 후 그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최근까지 정리해 둔 장르별 노래 목록을 순식간에 찾아냈다.

그는 "음성지원이 되는 프로그램이 있어 시각장애인 사이트에 가서 다운을 받을 수 있다"며 "음성 안내시스템만 제대로 된다면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그늘진 마음을 찾을 수 없는 그. 얼굴 역시도 구김새라곤 없다. 인터뷰 내내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모습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부모님 영향이다"며 "어려운 살림에 어머니가 14살 때 눈 수술을 시켜 줬다. 거지가 되어 빌어먹더라도 앞문으로 들어갔으면 뒷문은 알아보고 나와야 한다"고 한 맺힌 어머니의 마음을 밝혔다. 그 시절만 해도 맹인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나빴기 때문에 부모 마음인들 어찌 아프지 않았을까.

그의 아버지 역시 자식이 맹인이라고 속이지 않고 당당했다. 그는 "집에 손님이 올 때도 늘 인사를 시켰다. 절대 숨기는 법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켰다. 그래서 어두운 그림자가 없다"고 감사의 마음을 밝혔다. 아들이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일체 고기를 먹지 않고 아침기도에 온 정성을 다했다. 천수경 등을 1시간가량 외우며 축원을 쉬지 않았다. 그는 "아무래도 부모님들은 자신의 업(業)을 내가 지고 나왔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참회 정성을 놓지 않으셨다"고 소개했다. 4km를 걸어 다니며 3개월을 치료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과 이렇듯 긴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다. 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활기찰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인터뷰 중 선입관이 깨지는 순간을 여러 번 맞았다. 그럴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저 멀리 숨으려한 자신을 만나곤 했다.

인터뷰 말미 그가 말했다. 그는 "교도 훈련을 가면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나를 일반인으로 알고 못 따라하면 벌칙을 세우려 앞으로 불러내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다. 적어도 대중을 맞이하기 전에는 대충 어떤 사람들이 속해 있는지 파악을 하면 좋겠다"고 건의를 했다.

그의 치료실 벽에 액자가 걸렸다. '활인신수(活人神手)' 사람을 살리는 불가사의한 손이란 뜻이다. 어디 손뿐인가. 그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우울한 마음병 그림자까지도 모두 치료해 내는 언변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온통 무애보시(無碍布施)의 삶을 지향하는 그이기에 오늘도 마음날씨는 쾌청하다.

▲ 양 교도에게 치료를 받은 손님이 완치 후 선물한 '활인신수, 사람을 살리는 신의 손'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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