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강산이 묘지강산으로 변화되고 있다. 장례문화는 정부를 중심으로 국가 시책으로 삼아 보다 적극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해 가야 한다.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긴급한 문제임을 공감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이렇다 할 묘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금수강산을 묘지강산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원불교에서도 장례문화를 심각하게 논의해 봐야 한다.

지난해 11월3일에 큰 형님처럼 모셨던 오암 김낙봉 선생이 갑자기 열반했다. 선생은 6.25전쟁 때 종군기자였고, 대자연 국토보육 총재로 평생을 자연과 함께하며 살았다. 때문에 선생의 유시를 받든 미망인과 그의 딸은 유해를 서해안 바다에 뿌렸다.

김낙봉 선생의 그 유시를 받들며 선각자들의 장례를 돌아봤다. 중국을 오늘날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해준 주은래의 유해는 비행기 안에서 상공으로 뿌려졌고, 작은 거인 등소평의 유해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바다에 뿌려져 고기들의 벗과 바다의 수호신인 왕궁에서 함께하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조상은 물론 자기 묘지를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야 출세한 것처럼 생각한다. 초호화 묘지를 조성하여 금수강산을 묘지강산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 지하실에 안치돼 있다. 이태리의 공동묘지문화는 카타콤베(CATACOMBE)라는 특수한 지층의 50km나 되는 지하 동굴에 거대한 묘지를 조성하였는데, 지금은 시민들에게 관광 명소로 내주었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8억 인구가 북부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하여 육체로부터 영혼을 해방해야 한다는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매월 제를 모시며 까마귀나 독수리의 밥으로 내어주는 조수장(鳥壽葬)을 행한다.

묘지관리가 효를 대신할 수는 없다. 후손들에게 좋은 국토를 잘 보존시켜 주는 것이 오히려 큰일이다. 양지바르고 풍수 좋은 곳에 묻히기를 희망하고 그것이 가진 자들의 과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말로 효를 하고 싶다면 부모 생전에 전화로 안부 한 번 더 전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더 찾아가자. 주위를 보면 부모에게 충분한 교육이나 삶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부모에게 효를 더 잘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중요한 건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럼 장례문화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장례식장에 너무 많은 화환을 들여 형식적이고 소비적인 장식을 하지 말자. 필요 이상의 조객을 부르거나 복잡한 장례 절차도 재고해 봐야 한다. 서울 근교의 아름다운 가평의 높은 산을 모두 공동묘지로 망가트리며 묘지 천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 자리에 천만 원이 넘는 가격을 부르며 유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고, 의전에 있어서도 종교가 너무 깊숙이 간여하여 금전적으로 부담을 주고 있다. 차라리 부모가 생존해 있을 때 자주 찾아뵙는 것이 더 큰 효를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 형제, 친척 간 경제적인 이권다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 평소에 자녀들을 위해 유산을 미리미리 분배시켜 놓고 서로 갈등을 빚지 않게 그것을 소통, 공유시켜 둬야 한다. 생명연장에 대한 생각이나 시신기증에 대한 뜻도 미리 쓰는 유언장에 남겨야 한다.

원불교 영모묘원에 출가교역자들의 묘지자리가 없어졌다. 출가교역자들은 자연장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믿는 교단의 혁신적인 문화다. 나는 3년 전 누님인 성타원 이성신 원정사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열반에 든 날은 3월30일로 91번째 생신을 맞은 날이었다. 성타원 원정사는 평소에 좋아하는 여러 원로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주무시듯 거연히 열반했다. 그리고 당신의 육신은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열반 1년 후, 화장하여 영모묘원 추모탑 꽃밭에 흙과 함께 허공 중에 뿌려졌다.

누님은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하는 것과도 같다,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變化)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나니라"는 법문을 실행한 것이다.

<종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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