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사회적 역할 모색

▲ 일상 속 작은 기부를 실천하는 군산1호점 '착한동네'.
10살 서영이(가명)이는 하굣길에 곧장 카페로 향한다. '행복'이라 쓰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페 안 '무지개 도서관'이 서영이를 기다리고 있어서다. 다문화가정 아이라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적잖은 상처를 받는 서영이에게 이곳은 마음껏 책도 보고 뛰놀 수 있는 아지트다. 그래서 가끔은 하루 종일 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어둑해진 저녁, 엄마가 카페에 들어선다. 아쉽지만 서영이가 집에 갈 시간이다.

군산 지곡초등학교 근처에 가면 원룸촌 사이로 '노란' 목조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상 속 작은 기부 '미리내운동'을 실천하는 군산1호점 카페 '착한동네'다.

하지만 카페 안에 들어가 보면 어린이 도서관, 나눔 교실, 기부 갤러리, 작은 기도실 등이 있어 문화센터 같은 느낌이 든다.

수익을 담당하는 카페는 고작 해봐야 전체 면적의 1/4정도나 될까. 게다가 벽면에는 재능기부 강좌, 어르신들을 위한 반찬배달 자원봉사, 이웃을 위한 작은 기부 '착한일 미리내' 운동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안내돼 있다. '카페에서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진행하지' 하고 의구심이 들겠지만, 카페 뒤편에 자리한 '행복한교회' 박훈서 담임목사가 카페 주인장이자 바리스타라고 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카페 '착한동네'는 가까운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모든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박 목사의 목회활동 공간이다.

서울 토박이인 박 목사 부부가 9년간의 중국 선교활동을 마치고 4년 전, 군산에 내려온 것도 그 이유다. 다문화·미혼모·독거노인 가정이 많은 군산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해 보이겠다는 의지였다. 첫해는 건축사기와 차량도난사고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카페 '착한동네'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능기부, 자원봉사자라 할 만큼 지역 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서영이가 다니는 '무지개 도서관'도 '착한동네'의 재능기부 소식을 듣고 이웃동네 초등학교 교사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아이들 학습을 돌보고 있는 경우다. 기부문화가 확산될수록 동네라는 개념이 공간이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의 인적인프라로 바뀌어가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카페 '착한동네'의 활동들을 들여다 보면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새롭게 다가서게 된다. 법당이나 성당, 교회 등 공간이 가지는 한계에 머물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 믿음을 가진 신자들을 위한 종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종교가 세상에 나올 당시를 생각해 보자. 그 어떤 종교도 공간에 갇힌 경우는 없다.

소태산대종사도 깨달음을 얻은 후 원기3년에 방언공사를 시작했다. 이는 제자들의 신심과 솔성의 도를 시험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민중에게 생계의 방편을 마련해 주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탄생지이자 구도지였던 영산에서부터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도 교조의 큰 가르침이었다. 그 뜻을 우리는 과연 이어가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미리내운동은 100여 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발아한 '맡겨놓은 커피'가 모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티켓 값이나 거스름돈을 미리 내주는 일상 속 작은 기부운동이다. 국내는 2013년 5월에 미리내운동본부 김준호 대표(동서울대 전기정보제어과 교수)에 의해 시작됐으며, 전국에 400여 점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교단에도 교당과 단체와 연계된 카페들이 신설되고 있다. 교화를 위한 공간으로만 활동하기보다는 이왕이면 지역 공동체를 이끄는 중심 플랫폼으로 활동해 보는 건 어떨까. 전북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CEO카페 '두드림'도 좋은 예이다. 이곳에서는 한때 학업중단이나 가출 등으로 방황하던 청소년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저렴한 이용료로 차 외에도 미니직업도서관, 미니영화관, 소규모 공연장 및 세미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니 청소년교화, 지역교화를 고민하는 곳이라면 한 번 두드려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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